 연말소감(年末所感)
이동식
찬바람이 불어오는 창문 곁에 걸어 둔 두툼했던 달력의 시간들이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떠나 버렸습니다. 덩그러이 걸린 시간은 이 세상의 어김없는 순리를 실감하게 합니다. 엄숙한 선언같은 세월의 현실 앞에 아쉬운 마음이 얇아진 달력처럼 약해집니다.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더해지고 쌓여 가는 법인데 꺼내 쓰는 물건처럼 주어진 한 해를 거의 다 사용하고 곧이어 카운트다운 하며 링 위의 종이 울린 것처럼 마음도 조급해집니다. 새해 카렌다를 제작하기 위해 한 해 동안 활동했던 사진들을 모아 편집하면서 지나 간 날들의 흔적 들 위에 꽤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슴 뛰며 시작한 새해, 무더운 여름 땀 흘리며 달려왔던 시간들, 여러가지 열매들을 맺은 풍성한 가을이 아름답게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길을 같이 달려온 소중한 동역자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같이 했기에 힘들어도 여기까지 달려 왔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울타리 곁에는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탐스런 열매를 맺어준 나무가 앙상한 가지로 서 있습니다. 마치 자식들을 다 떠나보내고 빈집을 지키는 외로운 늙으신 부모님 모습을 닮아 쓸쓸하게 보여집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낙엽 쌓인 빈 가지에 동료처럼 다가가 말을 걸어 봅니다. ‘서운해 하지 말고 또 내년을 준비 합시다.’ 그러자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듯 가지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자리는 결산의 시간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늘 후회투성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더욱 이 날이 소중한 것은 다음 해로 넘어가는 디딤돌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정치가이며 작가인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이 세상 사람들에 성공을 이루는 비결이 있는 데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기회가 찾아올 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냐에 결과가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내일을 꿈꾸며 청사진을 꺼내 준비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월동 준비를 하던 선조들처럼,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를 베어 장작을 준비하고 땔감을 모으고, 풍성한 알곡을 수확하여 창고에 겨우내 먹을 식량도 저장합니다. 또한 여인들은 김장을 하여 찬을 준비하고 땅 속에 무를 묻고 고구마를 저장하면서 겨울 날 음식을 채비 합니다. 가을 햇살에 솜이불을 꺼내어 솜을 보송보송 타고 초가지붕을 새 옷으로 입혀 놓습니다. 벌써 따뜻한 온돌방에 행복하게 피어오르는 웃음소리 가득한 행복한 겨울이 준비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테니스 경기인 윔블던 테니스코트는 그 경기기간이 두 주간입니다. 오직 그날을 위해 일년내내 운동장을 관리하고 잔디를 기르며 준비를 합니다. 누구나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아기였지만 유아가 되고 학생이 되며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가는 것을 다 알지만 우리는 세월 앞에 설 때마다 “아니벌써”하고 당황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3:1)고 말씀하십니다. 연말이 코앞에 다가온 오후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면서 언제가 돌아갈 영원한 내세 천국을 믿음으로 준비하며 하루가 저물어 가는 우리집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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