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과, 예배 말씀으로 은혜받으세요~
 
 
교회소개
목회 / 말씀
기관별 게시판
커뮤니티
소식과 행사
갤러리(Gallery)
 
 
 
 
 
 
   
HOME | 목회 / 말씀 | 목회자 칼럼
 
목회 / 말씀
Muan1004
목회자 칼럼
BGROUP3
 
주일예배
목회자 칼럼
기도해주세요
전화번호
이메일안내
061-453-2862
청년대학부
 
 
 
 
 
 
 
생명의 뜨락에서
글쓴이 : 홈지기     날짜 : 18-03-12 12:23     조회 : 848    

생명의 뜨락에서
                                                    이 동 식
                                  (무안읍교회담임. 수필가. 무안문협부회장)

푸르게 열리는 아침 하늘이 무척 맑아졌습니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도 기분 좋은 어루만짐으로 부드럽게 불어옵니다. 날씨에 미안하여 오랜만에 운동복을 갈아입고 동산에 올랐습니다.  낮선 방문객을 환이라도 하듯 이름 모를 새는 잠든 가지를 깨우듯 가지 사이로 바삐 자리를 옮겨 날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지난 계절 불청 감기가 몸을 아끼게 만들어 붙잡아 자꾸만 눕혀 놓았고 폭설이 길을 막아 핑계을 만들어 오래간만에 나온 산길은 더 가팔라 숨이 차오르고 거리 또한 훨씬 늘어져 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웠든지 왠지 낯설어진 자리마다 친근했던 흔적이 보이고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듯 햇살까지 가지사이로 맞아줍니다. 발에 느껴지는 새 땅에 이슬비가 지나가서인지 촉촉한 생기로 부드러워 있습니다. 지난 계절 그 무섭던 폭설과 눈보라와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훈장을 내어밀듯 늠름하게 도열해 있습니다. 오래전 고사하여 넘어진 덩치 큰 나무에는 이끼가 자라고 마치 숲속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양 약동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소중한 사건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신비로운 생명의 은택 앞에 무디어져 버린 세상에 오늘도 소망으로 가슴이 뭉클한 새 생명은 설렘과 기쁨을 선물 합니다. 지난겨울엔 우매한 인생을 깨우치려는 듯 유독 사랑하는 지인들의 가정에 장례식이 많았습니다. 전도자의 지혜로운 일깨움처럼 날 때도 있고 죽을 때도 있고, 시작할 때도 있고 끝날 때도 있는데 우리는 그 자연스러운 만물 속의 매카니즘의 공식을 거부하고 싶어 합니다. 마치 태엽의 힘이 작용하는 한 힘차게 돌던 바늘이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시간의 흐름이 정지해 버린 것을 늦게야 깨달아 살아있는 동안이란 단어의 소중함앞에 겸손해 집니다. 우리는 애써 애면 하고 착각하며 이러한 생명과 죽음이 나와 관계가 없는 먼 거리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보물 중 살아있음 보다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우리는 삶의 불편함과 부족함을 이유 삼아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을 불행한 길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사선을 넘어 죽음이 우리 삶의 얼마나 가까이 존재함을 깨달은 자들은 인생의 순간순간에 감동이 다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생명을 주심은 다시 시작하는 기회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로 삶을 보게 하는 거룩한 안경입니다. 돌담 뒤에 숨어 침묵하던 백목련 솜털 봉우리가 하얀 속달을 살짝 내밀어 슬며시 올라옵니다. 자연에게 주어진 생명은 신비한 역동입니다. 이 세상 모든 자연은 이렇듯 자기의 때가 이르면 땅 속 깊이 감춰둔 생명을 꺼내 계절에 예민함으로 기다리던 생명들이 자기의 차례에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한없이 나약하고 여린 모습이지만 거긴 강하고 단단한 생명의 힘으로 자신으로 세워 한 계절을 살다가 아름다운 단풍색으로 세월을 연출하고 낙엽이 되어 홀연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세월의 흘러감을 쉬 감지하지 못하고 아직도 청춘이요 천만년 살아갈 것처럼 착각하고 오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겨우내 쉽게 꺽어 버렸던 그 가지 속에는 희망의 꽃과 달콤한 열매를 준비하던 꿈꾸던 생명이 있었습니다. 마치 스타트 라인에 선 선수처럼 그날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는지 숭고한 생명 앞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사전에서 생명이란 생물이 가지는 속성이라 정의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추상적이고 생리학이나 물질 대사적인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의사나 과학자들에게 생명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르고 사회적인 시각과 종교적인 차원에서 새명에 대한 이해가 다릅니다. 생명이란 생물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가지면 성장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떠나면 성장도 머물러 버립니다. 최근 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에 대해서 “정치생명이 끝났다. 예술생명이 끝났다.” 는 선언들이 많아집니다. 생명의 끝나면 이제 모든 기회가 끝나버리는 것이기에 생명처럼 존귀한 존재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물질적인 생명이며 생물체의 생존의 원동력입니다.
또 신앙적인 부분에는 영적인 생명은 관계성입니다. 생명은 어떤 방법으로도 피존물이 생산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역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을 잘 관리하고 아직 기회가 있음에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바른 인식이 부족하여 생명에 대한 경시하는 풍조는 인간에 대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현실세계에서 그 사람의 역할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유교는 사람의 탄생에서 삶, 사후를 하나의 연결선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생사일여나 생사불이라 해서 사람의 탄생이나 죽음을 별개의 둘이 아니라 연기론(緣起論)으로 연결되어 흐른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환생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 생겨난 불순종의 죄악의 대가로 생겨난 분리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해결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이 땅의 죄를 대속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도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하며 산 길을 내려옵니다.


 
   
     
 
주소 : 전남 무안군 무안읍 무안로 490번지 무안읍교회 Tel)061-453-2862
Copyright 2006 muan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