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는 마음
이동식
맑아진 아침 햇살과 함께 살짝 열려진 창문 따라 들어 온 강변의 솔밭 바람은 아직도 스산한 겨울을 안고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세상에 속일 수 없는 것이 시간이고 나이라 하듯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을 수 있으리요. 항상 청춘 같은 건강하던 사람도 어느덧 여기 저기 아파오고 약 봉지 챙겨 살아야 하고, 생각이 젊은 사람, 푸른 마인드를 강의하던 명사의 어록도 연륜이라는 묵은내가 풍겨 남아 어록으로 쌓입니다. 흐르는 세월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가을에 부는 바람은 여전히 같은 골목으로 불어와도 날마다 매워지지는 것을 속일 수 없습니다. 또한 봄에 부는 바람역시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날마다 더욱 더 부드러워 가벼워짐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진즉 입춘이 지나면서 봄을 향한 이런 저런 부푼 마음과 축원을 담아 입춘첩에 소원을 적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얼굴로 와 닫는 봄바람은 이름만 봄 단어를 품었지 아직도 겨울 체온으로 싸늘함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고도가 오기도 전에 사라지는 안타까운 노래처럼 이러다 봄이 오지 못하고 멈춰버릴지는 않을까? 성급한 마음은 열어진 창문을 더욱 활짝 열어 저만치 다가온 봄을 재촉하며 초청해 봅니다. 우리나라 겨울 왕국 평창에서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약 102개의 금메달을 놓고 3,000여명의 각국의 선수들이 모여 각축을 벌이며 겨울 축제를 열였습니다. 이러한 올림픽은 선수 모두가 자기들의 기량을 발휘하는 스포츠 대 제전으로 온 세계의 청년들이 기다려온 꿈의 무대입니다. 나름대로 각 나라의 국기를 앞세우고 국가의 위상을 위해 열심히 싸우지만 실상은 각자의 명예를 위해 자기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인고하며 노력하며 달려온 기다림의 날인 것입니다. 만약 이번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들은 다시 4년을 더 기다리며 준비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기다림이란 단어를 품고 돌아갈 것입니다. 겨울 스포츠 제전이 열리고 그 열기 때문에 봄이 오는 소리도 조심스럽고 봄이 왔다고 반기며 마냥 좋아하기도 어려운 계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마치 군에 간 신랑을 기다리며 시댁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냈던 새색시에게 시간은 거짓말 하지 않고 달려옵니다. 그리고 돌아 온 신랑을 만나반갑다고 말도 못하는 부끄러운 감격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봄에게 애써 숨겨 손짓을 해봅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젊은이들에게 덕망이 많으신 어르신께서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드는 법이지” 하시면서 같이 즐거워 해주셨는데 계속되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 잔뜩 화가 나셔서 “징허다 징해. 이제 눈이 와도 하나도 안 반갑다”라고 눈을 터시며 성화를 내셨습니다. 이번에 눈은 새벽에 집중해서 자주 내렸습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새벽 기도하는 시간은 걱정스러움 속에 다가오는데 혹이나 달려오는 성도님의 마음이 고마워서 먼발치까지 오실 길을 만들어 놓고 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마음에 눈 위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기다림은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갑니다. 적군에게 밀려 위기 속에 구원병으로 달려오는 병사를 기다리는 고립된 병사의 마음처럼, 마치 겨울이란 묵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만 치는 듯 안타까운 시간 저만치 "제발 이제는 봄이 와야 할 텐데," 마음의 귀에 봄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옵니다. 녹은 눈 위로 아직 찍혀 남은 산짐승의 발자국이 하나 둘 지워져가는 잔설을 따라 갯버들 솜털에 봄이 깃들어 있고 젖은 솔잎 뭉치 밑에는 제비 꽃 줄기가 보랏빛 아기 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급한 기다림이 투털이가 되었는데 산 속엔 벌써 꽤 가까이 봄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1926년 민족의 겨울 꽁꽁 얼어붙은 조국을 바라보며 “개벽”에 발표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삼 다시 읊으면서 마치 겨울에 빼앗기고 세상의 욕심과 재물, 권력에게 덮여버린 우리들의 얼어버린 희망의 봄을 기다려 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온 세상이 모두 한 통 속이나 된 듯 아님 말 조차 못하여 입술을 다물고 있지만 시인의 바램 처럼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이상화 시인의 지금의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인용)는 표현처럼 더디 오는 계절 봄을 기다리면서 봄 길을 향해 힘껏 달려가고 싶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간섭아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처럼 아랍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근대의 사건들을 조명해보면서 누구에겐가 어느 민족이나 인생에 희망을 기다립니다. 오랫동안 치워도 다시 밤새 쌓여 막힌 마음의 눈길을 치우고 오실 희망의 봄을 기다리며 노랠 불러 봅니다. “눈 꽃 // 눈 바람이 / 함께 온 봄 손님은 / 눈 꽃에 날리며 춤추며 내린다 // 찬 바람에 / 움 터 오르는 새 날은 / 언 땅에 샘물 모아 강물 되어 흐른다 // 입춘에 내리는 / 하얀 겨울은 속 옷 벗어 / 복사 꽃 노래지어 입춘첩에 그린다.” 눈 속에 올라 온 귀여운 쑥 순의 솜털 위에 행복한 기다림이라 의미를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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