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서
이 동 식
(한국문인협회. 무안문협부회장. 무안읍교회)
철을 잃어버린 노랑나비 한마리가 가쁜 숨을 내 쉬는 여름 숲 속의 전령 원추리 꽃 위로 너풀거립니다. 지난 봄 소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추억의 편지를 들고 나선 그 날처럼 수줍게 날개를 펄럭입니다. 산행 길에서 만난 봄의 전령 덕분에 한 여름 봄날의 추억에 잠시 잠겨 희망의 노래를 불러 봅니다. 어느 덧 주름이 깊고 굵어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던 그날의 추억들은 마치 멈춰 버린 시간처럼 생생하게 오늘을 나와 대화를 걸어옵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지난봄의 일들을 보따리에 싸서 보내어 왔듯이 지난 날 추억 속에는 내가 살아왔던 심장소리가 들려옵니다. 꿈 많던 시절, 한 편으론 두려웠던 미래와 일들을 겪으며 이제는 여러 차례 터널을 지난 후 달려가는 기차처럼 그 수많은 사연들이 나라는 인생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우리에게 과거 또는 내 자신과의 대화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그중 유독 우리가 부르는 노래, 특히 동요나 가곡 속에는 그 시절 내가 숨어 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동요는 코흘리게 초등학생인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하고 간혹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연가’나 ‘진주 조개잡이’들이 방영될 때면 고교시절 수학여행 때 겨우 몇 개 더듬거리는 코드로 키타를 울리던 노래 부르던 그 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음악 멜로디, 그 시절의 향기, 빛바랜 사진들이 마음을 젊어지게 합니다. 어젯밤에는 현제명 선생의 작사하신 ‘고향생각’을 불러 봤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가곡이 안내한 고향집으로 달려간 내 마음은 벌써 고향 사립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친숙한 사랑채 뒤로 오래 된 감나무에 걸린 하얀 달빛 아래로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달려 나오시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만나면 한없이 편하고 부담 없이 다가서지는 그 마음은 밤새의 행복한 대화를 시작하게 합니다. 추억의 창문을 열리면 거기에 다정한 만남들, 반가운 일들이 가득합니다. 시대의 흐름은 점점 대화의 횟수가 줄어가고 만남의 감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때론 같은 일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천리만리 떨어져 사는 이상한 공동체가 되어 갑니다. 손이 내밀어지고 다정스런 참된 만남이 회복되면 거기에는 밤을 새워도 행복한 대회가 열립니다. 여름날 후덥지근하여 답답하고 무더운 우리 삶 속에 만방으로 창문이 열려서 좋은 만남과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고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사랑의 바람이 불어오고 더불어 행복한 계절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리움을 만나 추억을 이야기하고 오늘의 나를 만나 객관적으로 내 삶을 나누고 이웃을 만나 포근함을 누리고 싶습니다. 녹음 아래 열기로 다가오는 바람은 온갖 만물을 태울 듯 대지를 달구고 있습니다. 다가온 열기를 식혀 주려는 듯 이름 모를 풀벌레의 노래 소리는 성급한 매미군단의 척후병처럼 곧 열린 한여름 밤의 연주회를 앞두고 이미 자리를 하였습니다. 그늘 아래로 모여든 사람들은 초면인데도 금방 지우가 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별로 웃기지 않은 정담의 향기를 품은 이야기로 웃음의 꽃을 피웁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면서도 마음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단절된 시대입니다. 더운 여름에 마을 동각이나 큰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담도 나누고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 문화와 밀폐된 현실은 모이기보다는 점점 각자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여름을 보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공간인 해수욕장등, 피서지에 있어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이웃 때문에 무덥고 짜증스러운 피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어른들과 보이지 않는 담을 형성합니다. 몇 년 전 존경하며 사랑하는 분으로 부터 의미심장한 예쁜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글로리아 에반스(Gloria Jay Evans)의 "담"(A. Parable)이라는 책 입니다. 담이란 책은 임상 심리학을 전공한 의사인 그는 오늘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립과 단절이란 위험한 고통과 심리를 잘 묘사한 책입니다. 지금 나를 고립시킨 것은 다른 사람들이 쳐놓은 장애물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만들고 고립되어가는 “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고립시키는 담을 헐어야합니다. 대화를 통해 사랑과 소통으로 관계를 회복 하도록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요즘 도심지 주택가에선 둘러싼 벽돌담을 헐어내고 새롭게 조경하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이는 창문을 활짝 열듯이 더욱 가까워지며 견고한 마음의 담을 허는 소중한 사랑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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