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너머 강촌에는
이동식목사(무안읍교회)
신록으로 갈아입은 가지에는 생명이 빛나고 있습니다. 한 낮의 기온은 분명 여름 날씨인데 아직 이 계절의 주인은 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가온 봄을 더욱 가까이 보고 싶어 가마골의 얼음물을 시원지로 하여 용추산 자락으로 휘감아 바다를 향하여 138.75㎞를 흘러내려 남도의 강산과 들판을 기름지게 적시고 생명을 나누며 흘러내리는 영산강의 줄기가 마지막 산허리를 붙잡고 감아 도는 마을 강촌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엔 사람의 마음까지 깊게 빨려들게 하는 맑은 눈동자의 아기 당나귀가 산다기에 그곳을 향한 발걸음에는 설레임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강촌의 예쁜 집에 도착하자 달려 나와 나귀보다 먼저 우리를 맞아 주는 분은 소년의 동안을 간직한 촌장님이셨습니다. 드디어 오후 새참을 즐기던 당나귀 삼형제와의 첫 만남,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먹이에 정신이 팔린 나귀는 불청객인 내게 쉽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대화를 해보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그냥 혼자 본 것으로 만족하고 무안해진 눈길을 옮겼습니다. 멎적은 마음을 알기라도 했을까? 마사(馬舍)에는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몽골산 백마가 신비함을 간직하고 날 환영했습니다. 이 새봄 저 몸에서 곧 태어날 귀여운 새끼는 백색의 눈부심 속에 등에서 날개가 나와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는 상상을 일으킵니다. 까만 턱시도와 매끈한 다리, 늘씬한 허리의 꽃미남 말들과 일일이 인사를 마치고 강가 다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니 영산강에 이런 비경이 있다니. 갑자기 콧노래가 나옵니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진한 향수를 심어준 파인(巴人) 김동환(1901-1958)님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 남촌서 남풍 불제 나는 좋데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던 어린 시절의 마음속 강촌 풍경을 현실로 여기서 만난 것입니다. 다정스런 촌장님의 사랑을 담은 유리잔의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천연향으로 호사롭게 몸을 추스르며 눈앞에 다가오는 환상 같은 현실, 황금빛 노을이 비단처럼 강물에 드리워져있고 그 강물을 좌대삼은 앙증스런 작은 섬들에는 곧 인어공주가 올라와 긴 머리를 손질 할 것만 같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누가 사는지 모르는 강변의 작은 섬에는 하얀 학들이 주인인양 자리를 잡았습니다. 백사장 자락에는 섬세한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갈대숲이 실루엣이 되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변을 내려다보면서 촌장님은 나귀와 함께한 그 생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펼치셨습니다. 짐승들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를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면 다른 말이 다가와 옷을 물며 자신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떼를 쓴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나귀들도 다 달라서 어떤 나귀는 뒷발질하고 사람에게 대들며, 입으로 구유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또 울타리를 자주 넘어 가서 남의 농작물에 말썽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도 간혹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사랑이 약해지노라면 그 나귀는 더욱 성질이 괴팍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듯 사랑으로 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키우던 나귀가 수 십 마리로 늘어나서 자식을 출가 시키듯 분양해 보냈는데 약하고 상처난 병든 세 마리는 차마 보낼 수 없어서 지금 같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귀는 원래 순한 동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입성에서 "주가 쓰시겠다" 하시면서 부르셨던 나귀처럼 순박하고 겸손한 나귀의 품성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봄은 축복의 계절이며 생명의 계절 입니다. 봄 동산에는 짝짓기를 하고 알을 까고 새끼를 낳는 생명의 역사로 가득함으로 새 가정과 새 생명이 잉태되고 있습니다. 남촌 강변의 작은 무인도의 섬 동산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했습니다. 화려한 봄 무대의 주인공은 역시 새 생명입니다. 새싹과 어미 닭의 날개 밑에 모여든 병아리 등 모두가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강촌의 모래밭에는 생명이 깨어나는 숨소리가 지금도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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