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이 지는 가을 동산에서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볏짚 냄새가 가을의 독특한 향기가 되어 퍼지는 가을의 들판은 이발사의 손길처럼 넓혀져가고 있습니다. 들판은 비워져 가지만 농부의 가슴과 곳간은 풍요와 기쁨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모처럼 몇 분 사랑하는 분들과 건강의 부담을 안은 채 반 강제적으로 이끌려 가까이 있는 산에 올랐습니다. 오랜만에 오르는 산행이라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채근하는 아내의 구령에 맞춰 애써 즐거운 마음으로 바꾸면서 오르는 산행 길에는 아직 푸른빛이지만 곧 주홍의 채색으로 화려하게 갈아입을 새 옷을 준비하고 있는 아기단풍잎들이 맞아주었습니다. 앙증맞은 아기 손 같은 잎새 사이에는 지난 봄 온 산에 꽃눈을 날리며 화려하게 봄을 알리던 벚나무가 모든 영광을 낙엽으로 돌려보내고 가지만 남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마치 언젠가는 몸처럼 친숙해졌던 화려한 모든 자랑을 세월의 제단앞에 곱게 접어 낙엽으로 돌려보낸 선배가 되어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쓸쓸해진 가지 옆에는 여리지만 가을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람에 수줍어 붉어진 얼굴로 설레임과 긴장 그리고 미소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준비하는 가을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인생의 스승입니다. 분주한 삶속에 놓쳐버린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고 또 오늘 달려가며 바라보지 못한 우리의 삶의 자세를 교정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던 바짝 윤기 나는 청솔모 한 마리가 정결케 빗질하고 신경 써 세운 꼬리를 흔들면서 가지 사이로 날아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자기 집을 찾은 낮선 방문객을 보고 놀랜 것 만 같습니다. 아마 그 산행 길에 익숙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겠지만 오랜만에 나타난 왠지 어설프게 찾아온 침입자를 보고 경계심과 호기심이 생긴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과거엔 익숙했던 그 산길에 둔해진 몸짓으로 거친 숨소리를 품어내며 오르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놀랬습니다. 교행하던 초면의 산행자가 ‘건강’이란 구호로 내게 인사를 건냅니다. 산길에서 듣는 건강이란 단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지나치는 모든 분들은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데 나만 왠지 이방인같이 어색해집니다. 산마루에 휴식터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허리를 돌리는 기구, 평행봉. 철봉 그리고 다리를 올리고 펴는 것 들을 코스대로 한 바퀴 돌아봅니다. 친숙한 운동기구 사이엔 용도를 모르는 한 운동 기구가 있습니다. 넓은 널판이 가로로 있고 잇대어 약 45도 정도 기울어진 널판이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뭐하는 거지 궁금해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해봅니다. 마땅하게 어울리는 동작이나 자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터앉아 쉬기로 하였는데 다리를 쭉 펴고 기울어진 널판에 허리를 기대니 편하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또한 눈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산길과 나무만 바라보던 눈앞에 파랗고 높은 하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편한 마음, 역사학자 정준기박사의 저서 "사막교부들의 영성"에 나오는 마치 사막의 교부들이 누렸던 헤스키야의 경지에 들어선 것만 같았습니다. 온 몸도 그리고 마음도 정신까지도 맑은 공기로 다 씻어내고 새로워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자유와 평안 그리고 고요 속에 가장 완전한 쉼을 허락해 주는 듯합니다. 찬송으로 기도 해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의 맘을 다스려 주옵소서. 사막의 교부들이 누렸던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과 신비한 연합 누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 했던 그 천상의 희열이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득 찬 마음의 욕망과 죄악의 욕구들을 다 내려놓고 누리는 아파테이아의 행복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용도의기구인지 몰라도 나는 이름 하나 지어 주었습니다. “아파테이아” 내가 하늘을 보며 내 속의 것들을 내려놓는 운동기구라고, 다시 오르면 다른 건 못해도 이 곳 에 다시 누워서 나와 하나 된 자연과 산, 나뭇 들과 하늘을 바라보는 행복한 호사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최근 운동 부족으로 너무나 많이 늘어나 버린 몸무게가 고민입니다. 삼대한의원의 비만클리닉을 운영하시는 조집사님이 상담하시며 겁을 잔뜩 주었습니다.. ‘목사님 드시는 것 조심하세요. 그리고 운동을 시작해서 몸무게를 줄이세요 안 그러면 큰일 납니다.’ 몸무게를 줄이려 오른 산행 길에 마음의 욕심도 짐도 줄이라는 음성을 듣는 듯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화두가 되어 등장한 책이나 찬양의 가사들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와” 이번 가을 큰 스승인 자연 앞에서 멋지게 돌아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나눔으로, 내려놓음으로, 절제로, 마음의 몸무게도 삶의 몸무게도 감량해보고 싶습니다.
어제 만난 조집사님의 말씀이 부담이 됩니다. “목사님 우리 만날 날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동안 잘하시고 계시죠?” 지난 번 상담 때 처방해준 운동법과 식사법대로 하지 못하고 변화가 없는 몸을 바라보면서 걱정이 생깁니다. 다 내려놓자는 얘긴신데... 내려오는 산길에는 수십 장 숙제 중 어렵게 한 장을 마친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행복해졌습니다.
화려한 가을의 마지막 단풍잔치를 위해 공연복인 채색 옷을 수줍게 앉고 떨리듯 대기실에 앉아있는 애기단풍을 뒤로하고 자연이 가르쳐준 마지막 단풍잔치의 교훈 앞에 내 인생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산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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