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어진 단풍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던 날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저물어가는 하늘가로 가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끝이 없는 높아진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나부끼는 긴 비단은 진달래 빛 봄의 화신과 여름의 사연을 담아 쪽빛으로 하늘거립니다. 염재를 만들던 장인들의 긴장된 손에서과 커다란 통에 담겼던 싱싱하고 연하던 풀물이 뜨거운 태양의 열을 담아 삭아지면서 곱고 짙어져 드디어 신비한 빛깔이 되어 흐르는 시간 위로 가득합니다. 마치 향을 품은 그 많은 꽃들을 농축하여 그 깊은 향을 가진 향수를 만들어 내듯이 지난여름의 태양은 대지를 데웠고 진한 향과 색감을 이루었습니다. 식어가는 대지의 체온은 계절의 선물, 단풍의 붉은 열정으로 다시 데워져가고 성숙하고 깊어진 청자 빛을 품은 하늘은 금방이라도 짜면 푸른 물감이 비되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이 맘 때가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어린 시절 마음의 동산을 향해 가을기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황혼의 산야엔 솜털처럼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이미 농익어 짙어진 공기의 빛깔은 하늘과 들판을 이미 점령하였고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가는 기차의 초조한 레일 충격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두르게 하며 어떻게 마지막을 달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사람들로부터 ‘국민 마라토너’란 이름을 부여받은 선수가 전국 체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전국체전을 그의 마라톤의 고별무대로 삼았고 전력으로 달려와서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 들어온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선수로서 의미 있게 인생의 멋진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것입니다. 국민들이 그를 사랑한 것은 그의 성실하고 소박한 인격, 마라톤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 화제가 된 것은 그의 마지막 레이스에는 의미 있는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온 국민 그리고 마라톤관계자, 감독, 코치, 모두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온 국민이 TV앞에 앉아 아들을 응원할 때도 긴장하시어서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시던 평생 노심초사 아들을 품고 사신 노모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응원과 감동스러운 축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의 의미와 자랑을 자녀들에게 둡니다. 소박한 사람들은 식당이나 조그마한 상점을 열 때도 자녀의 이름으로 상호를 삼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자부심을 삼으며 살아갑니다. 또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의 칭호 또한 자기의 이름보다도 누구엄마, 누구아빠라고 불러지는 것을 더욱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마라토너로서 그의 마지막 레이스는 무엇보다 그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기에 최선의 역주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전 국민이 지켜보는 눈동자보다 더 큰 어머니와 아들의 눈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에서 마라톤을 마쳤지만 자신의 인생은 지금 여기가 반환점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화려하지만 그 중심에 흐르는 소박한 단풍이 짙어져가는 산야를 바라보면서 한해의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는 자연의 엄숙함을 가슴으로 바라봅니다. 마치 한 해 동안의 모든 역사를 담은 진액을 잎새에 꽃으로 피워낸 듯하기 때문입니다. 멋진 마무리는 감동이 있습니다.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하는데 매 순간 손에 땀이 마르지 않았던 경기들이었습니다. 이 번 모든 경기의 최고 멋진 장면은 마지막 순간까지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던 중 시원스럽게 팀을 승리로 이끈 굿바이 홈런일 것입니다.
홈런을 날리고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선수와 관중들 그리고 덕 아웃의 선수들의 모습은 환희와 감격이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노장들의 든든함과 젊은 선수들의 패기가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이었습니다. 오늘도 긴장 속에 들어선 인생의 경기장에서 손에 땀을 지며 달려온 오늘, 온 힘을 모아 인생의 승리를 이룬 감격의 눈물과 땀의 행복한 역전의 멋진 홈런을 날려봅시다.
내려가는 수은주를 바라보며 옷깃을 세우고 우리 가슴 속을 붉게 물들게 한 단풍의 진한 고백을 담은 아름다운 레이스를 생각해봅니다.
등대처럼 황금색으로 사랑의 고백을 담아 진홍색으로 그리고 엄숙한 겸손의 갈색 옷으로 단장한 계절의 선물은 화려함과 밝고 환한 미소와 소박함과 절제를 담은 자연스러움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이미 우리 가슴 속으로 깊이 찾아온 계절의 채색 옷으로 갈아입고서 깊어가는 계절의 품을 향하여 멋진 레이스를 펼쳐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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