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레임이 숨 쉬는 고향의 황금 들판으로
이동식목사(무안읍교회)
살갗에 닿는 바람에 가을이 묻어 있어 나도 모르게 들길을 나섭니다. 더 맑고 푸르러진 하늘엔 제트기가 항공운(航空雲)을 남기고 지나갑니다. 청자 빛에 반사되어 비추어진 형광색 들판은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걷는 마음에 수줍은 석양빛의 인사로 얼굴이 붉어져 힘차게 들길을 달려보기도 합니다. 길가에 흐드러진 들국화, 벼 익는 냄새는 초동시절과 변함없이 정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메뚜기가 반겨줄 것 같은 기대로 다가간 황금 들판엔 이름 모를 벌레들만 떼 지어 날아다닙니다. 겸연쩍은 마음에 고개를 드니,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들판을 배경으로 어우러져있어 역시 가을 꽃 중의 왕이란 생각을 하게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나 꽃잎을 하나 따서는 사이꽃잎을 떼어내고 저 높은 가을 하늘로 던져 올려 봅니다.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바람을 타고 빙글 빙글 원을 그리며 내려오는 것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환절기라 더욱 지친 몸을 다스리려 일찍 눈을 붙인 늦은 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화기 너머 묵직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린 시절 친구로 지냈던 고향 옆집 친구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황해하는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쪽에서는 한참동안 자신의 형제와 부모님의 이름을 설명하며 자기의 존재를 설명했지만 난 기억너머의 혼동으로 인해 머뭇거리고 옛날로 돌아가 추억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얼굴에 적잖이 당황해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린 잠을 다시 청하지 못하고 생각은 벌써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누볐던 들판이며 골목길로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무논 속으로 뛰어다니며 병정놀이를 하고 황금 들녘을 달리고 소꿉놀이, 비석놀이, 자치기를 하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던 친구들 속에 방금 전 전화를 건 친구의 까까머리 얼굴이 어슴푸레 떠오릅니다. 내가 미쳐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내일은 사과의 전화라도 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소나무가 가득하던 야산을 깎아 황토가 묻어나는 운동장과 두부모양으로 세워진 막 교사(校舍)였습니다. 시골중학교엔 매년 가을이 되면 이웃 도회지 사진관에서 사진 할인티켓을 팔려왔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원서도 써야하고 앨범도 만들어야하기에 그 시절 그 일은 학생들이 기다리던 아주 중요한 연례행사였습니다. 그들은 쉬는 시간, 선생님들 몰래 교실로 찾아와서 사진 티켓을 팔았습니다. 몇 천 원짜리 티켓을 사면 교복을 입은 채로 서서 오른손으로 책을 한 권 들고 비스듬히 서서 한발을 약간 앞으로 내민 긴 사진 2장, 증명사진 몇 장, 그리고 사진관 벽에 그려진 창경원 팔각정 그림 앞에서 가슴위로만 찍은 넓은 사진 1장 그리고 사진관에 준비해 놓은 사복을 입고 약간 비스듬히 때론 손을 턱에 괴고 찍어서 나뭇잎모양에 인화한 사진, 그 밑에 흘려 쓴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새날이 오리니 언제나 마음은 미래에 살고 슬픔은 스쳐가나니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날아가고 곧이어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곤 하였습니다. 그 글귀는 가난한 어린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소를 끌고 가서 산언덕에 메어놓고 꼴망에 하나 가득 풀을 베어 채워놓고 여유로이 고추잠자리가 나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아지풀에 가득 꿴 메뚜기를 불에 구어 먹다보면 어느 덧 움푹 팬 소의 허리가 불룩 차 올라오고 넉넉해진 마음으로 뉘엿한 들길을 걸어오곤 하였습니다.
들판은 그 풍요를 품기 위해 지난 봄 언 땅을 일구고 작열하는 태양아래 김을 메고 벌레를 잡았습니다. 거기엔 희망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포르투칼의 대탐험가 바르톨로뮤디아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다 태풍을 만나 절망과 고통의 마음을 담아 이름한 ‘폭풍의 곳’(Cape of Storms)을 조안2세는 인도로 가는 희망을 기약하며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이름을 바꿨고 결국 11년 후 1498년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달했던 것 같이 어린 시절 우리의 들녘은 소중한 희망을 키우는 훈련장이었습니다.
황금 들녘의 풍요 속에 만난 가을은 엄숙한 승리자의 여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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