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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글쓴이 : 홈지기     날짜 : 09-08-19 07:08     조회 : 825    

여름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여름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내 고향 남쪽 바다 /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요 / 그 잔잔한 고향 바다 /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노산 이은상(1903~1982)선생이 작시하고 작곡가 김동진 선생 이 작곡한 “가고파”를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콧노래로 부르면서 아쉬움 속에 떠나가는 여름의 배웅을 남해안에 자리한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통영의 길목에서 보냈습니다. 명경처럼 맑은 바다는 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식혀 보고자 푸른 바다 속으로 툼벙 뛰어 들고 싶었으나 떠나가는 계절을 보내는 아쉬운 눈물인양 바닷물은 우리의 입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 만들어낸 해금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의 거대한 걸작품이었습니다. 해변으로 조성된 남망산 조각공원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사들의 조각 작품들이 자리하고 푸른 잔디 위에 ‘출항’이란 작품은 마치 여름의 추억을 가득 싣고 희망의 나라로 떠나는 인생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이 고장의 서정시인 청마 유치환(1908~67)님의 시비 “旗ㅅ발”이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청마는 이 떠나가는 계절보다 다가오는 가을을 맞으면서 그의 정서를 담아 ‘입추’라는 시를 적었습니다. “이제 가을은 머 언 콩밭 짬에 오다 / 콩밭 너머 하늘이 한걸음 물러 푸르르고/ 푸른 콩잎에 어쩌지 못할 노오란 바람이 일다 / 쨍이 한 마리 바람에 흘러 흘러 지붕 너머로 가고 / 땅에 그림자 모두 다소 곤히 근심에 어리이다/밤이면 슬기론 제비의 하마 치울 꿈자리 내 맘에 스미고/내 마음 이미 모든 것을 잃을 예비 되었노니 / 가을은 이제 머언 콩밭짬에 오다” 
남망산에서 만난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태양의 계절 여름을 배웅하는 마음으로 두 분의 노래를 불러 봅니다. 역시 바다에 어울리는 계절은 여름입니다. 아쉬움을 품은 석양의 물결은 은빛에서  주홍으로 물들이며 마음속에 보석을 박아놓고 떠나갑니다.
얼마 전 목공예를 하시는 한 공방의 작가님으로 부터 녹차를 뜨는 찻숟가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수줍어하면서 전해주던 그분의 모습처럼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손끝에 전해오는 부드러운 감촉은 그분의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온 몸으로,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해 범벅이 되면서 나무와 씨름하는  모습은 마치 수도사와도 같았습니다. 거친 원목을 잘라내고 다듬고 거기에 글씨나 그림을 세기고 때론 그 글씨 부분을 파내기도 하고 때론 그 선 밖의 부분을 파내기도 하는 조각 끌은 세월의 흔적이 아닐는지... 인생이란 때론 내 자신을 깎아 내고 주변을 파내며 만들어가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내린 어느 날 잠시 들린 공방 앞의 쓰레기통에는 제법 큰 작품이 산산조각이 나서 버려져 있었습니다. 족히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만든 작품 같았습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휼륭한 작품인데 왜 부수었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단호히 그러면 잘못된 부분이 계속해서 남을 것 같아 미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작품을 남기며 떠나는 여름처럼 살아갑니다. 마치 공방 작가분이 작품으로 그의 삶을 남기려 하듯이. 유한한 인생길에서 내가 남긴 것들로 인해 내가 기억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조각가의 말처럼 대리석 덩어리 안에 들어 있는 작품을 생각하며 다른 부분을 쪼아 내어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 지듯이 오늘 우리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깎아내고 다듬어 멋진 인생이란 작품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민주화운동의 역사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생은 이렇듯 만들어져 가는 것인데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많은 제자를 배출하시고 한 시대의 신학자로서 사셨던 존경하는 이진태 박사님이 부르심을 받아 떠나시면서 생애 마지막 남긴 말이 지금도 마음에 울려옵니다. “나는 새 은혜를 만납니다. 나는 새 은혜를 만납니다.” (백산 이진태박사 추모문집 ‘동행’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 가보면 우리는 앞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가을은 봄부터 달려온, 그리고 여름을 이기고 달려온 흔적을 열매로 만납니다.
며칠 전 목회현장에서 헌신하시는 동역자들이 모여 모처럼 운동을 했습니다. 많이 둔해진 몸들이었지만 젊은 날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마음은 왕년에 비해 항상 결과는 아쉬움입니다.  몸보다 입으로 운동하는 나이가 되어 떠들다보니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선수는 점수로, 골로 말하는 겁니다. 경기에 집중합시다. 화이팅” 경기장에서는 외모보다 사실 그 점수를 내며 이기는 자의 무대입니다. 추억의 여름을 먼 바다에서 배웅하여 보내고 돌아오는 길. 말로가 아닌 열매로 서 있는 가을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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