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에 이미 그려 놓은 행복한 미래
며칠 전부터 주변이 바빠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머지않아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시집 올 신부의 신방을 준비하듯 겨우내 버려졌던 땅을 쟁기로 갈아 부슬 부슬하고 깔끔한 모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대를 품고 여린 고추 모종을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단비를 기다리다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오전 내 내리던 비는 벌써 뿌리를 내린 모습처럼 생생하게 세워 자리를 굳건히 해 놓았습니다. 다시 하늘에 햇살이 밝아옵니다. 봄 비가 지나 간 샛길에는 어디선가 짙은 향기가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얼굴을 내민 햇볕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던 신록 위로 나비처럼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 오른 찔레 꽃들의 등장이었습니다. 구름 뒤로 숨었다가 깜짝 나타난 듯 부전나비 부부가 어느새 꽃 위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마치 그동안 모르게 감춰두었던 비장의 실력들을 생기로 향기로 드러내듯 강렬한 생명이 펼쳐집니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이루어내는 거룩한 약속처럼 감춰진 생명력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며 문호이고 시인이면서 뛰어난 학자였으며 정치가로 알려진 소동파(蘇東坡)의 글에 흉유성죽(胸有成竹-가슴 흉, 있을 유, 이룰 성, 대 죽)이란 유명한 말이 전해 옵니다.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좋아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그림보다 문여가(문동)이란 사람의 대나무 그림은 사람들로부터 최고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대나무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그림 속에서 대나무 가지가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나고 땅을 뚫고 쑥 올라오는 죽순의 모습이 살아있게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당시 명인이던 소동파와 사마광이 문여가(문동)를 존경하고 좋아했습니다. 같은 시대 시인이던 귀래자(歸來子) 조씨(晁補之)는 그와 친해서 그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을 좋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귀래자 조씨에게 찾아와 묻습니다. 그 전설적인 대단한 화가인 문동의 그림은 과연 어떤 경지입니까? 그는 4자로 시를 지어 대답합니다. “흉유성죽(胸有成竹)이라” 먼저 그는 살아있는 대나무 밭을 거닐며 그 살아있는 대나무와 대 숲을 자신의 가슴에 품어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슴의 그림을 꺼내어 화폭에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의 집 주위를 온통 대나무 숲으로 이뤘는데, 대나무 숲을 거닐면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정경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돌아와 대나무를 거침없이 그렸습니다. 농부의 가슴에는 이미 풍요로 가득한 결실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기예보를 들으며 이미 생명수 같은 단비로 소생 하여 살아날 모종을 가슴에 이미 그렸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 아침에 찔레 향기가 가득한 샛길에서 이제야 향기를 발견하고 생기 넘치는 고추밭을 바라봄이 아닌 농부는 위대하고 행복한 꿈을 가슴에 그리는 선각자 같이 느껴집니다.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도 그의 작품 세계를 말하면서 "First I dream my painting, then i paint my dream." "먼저 나의 그림을 마음에 그리고, 그 다음 그 마음에 꿈을 그린다." 환자는 건강 회복을 기다리며 퇴원 날 입을 옷을 준비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른 사람은 합격하고 나아갈 미래를 가슴에 품습니다. 군인은 재대 후의 행복한 사회생활을 가슴에 품습니다. 자연은 미래를 준비해주는 실망 시키지 않을 꿈의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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