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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추억을 가슴에 싣고
글쓴이 : 홈지기     날짜 : 10-08-17 00:34     조회 : 814    

지난 여름의 추억을 가슴에 싣고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좁다란 길목으로 가을 향하는 계절의 행렬이 자꾸만 느려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태우며 아쉬움에 놓치 못하는 연인의 떨리는 손길처럼 계절의 열차는 속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직도 뜨거운 태양은 대지로 하여금 가뿐숨을 몰아쉬게 합니다. 순간 예측도 못한 물 폭탄이 대지를 식히며 쏟아집니다. 예고 없이 하늘 어느 쪽인지 거대한 하늘 호수의 뚝이 터져 버린 듯 한없이 부어지고 또 쏟아집니다. 어느 덧 도로는 강이 되어 흐르고 마당은 호수처럼 물이 채워집니다. 계절의 시계 속에서 제법 무겁게 고개를 숙인 누런 벼의 머리 위로는 참새들이 낮게 날아오릅니다. 제법 높아진 하늘에는 솜사탕을 찢어놓은 듯 하얀 구름이 널려있고 진한 녹색 고추나무에는 붉은 주머니가 성글게 열렸습니다.
계절의 이름을 누구라고 부를까? 여름, 또는 가을이라 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야말로 환절기의, 누구도 의의를 제기 할 수 없는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을의 생각은 풍요와 만족입니다. 농부는 지난 봄 부터 이 풍요를 마음속에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함으로 따라 살아온 사람은 여름동안 이미 행복한 마음으로 가을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과정 속에 나타난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불평과 낙심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결국 결론을 보고야 행복해 합니다. 진정한 삶의 변함없는 행복의 비결은 오늘 우리의 삶의 달리는 중에 이미 풍요의 가을을 바라보며 행복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성급한 상술(商術)은 가을을 벌써 진열대에 올렸습니다. 마음 급한 여인들은 벌써 가을의 무게가 느껴지는 옷을 준비합니다. 그들은 벌써 가을을 살고 있습니다.
가을로 가는 길목의 좁다란 길가에는 키만큼 자란 옥수수가 파수를 서서 기다립니다.
태양에 달궈진 도로변 옆 노란빛 달맞이꽃은 대지를 식히며 밤을 밝히는 꽃을 피웠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준비합니다.
며칠 전 사랑하는 초동친구부부가 휴가차 고향에 내려 왔습니다. 이제 어느덧 자녀들은 장성하여 같이 움직여주지 못하는 시대, 낮에는 직장에서 집에서 이산가족처럼 상봉하며 살던 친구가 고향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고향을 찾아갔건만 그 마음속의 고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변화된 새로운 고향 풍경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떠나간 고향의 오늘은 낮선 이방인들의 마을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간혹 마을 어귀에서 만난 어린 날의 아련한 추억들은 가슴을 다시 고동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금방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히말라야로 여겨져 하늘에 닿았던 뒷산이 눈앞까지 가까이 낮아져 버렸습니다. 풍뎅이을 실에 묶어놓고 매미을 잡아 귀에 대고 소리를 청하던 시냇가, 오르내리며 놀던 고목이 팽나무, 그 그늘 아래에 앉아 기억 속의 과거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피워주신 쑥 냄새나는 모기불 연기를 향기 삼아 평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습니다. 보리밥에 물을 말고 고추에 된장을 찍어 이른 저녁을 다 먹을 때 즈음에는 어느새 까만 하늘에 별들이 가득합니다. 별을 헤다가 닳아빠진 부채 바람을 맞으면서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면 왕자 같은 호사를 누리는 최고의 밤이 되었습니다. 별빛이 흐릿해지고 부채 바람 속으로 들려오던 어머님의 자장가 발음이 불분명해지면 멀리 하늘 건너편 나라로 꿈 여행을 떠납니다.’
그 감동을 다시 꺼내어 입혀줄 고향강산은 너무나 많이 변해 버렸습니다. 아! 옛날이여! 그립기만 하지만 불편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은 그냥 추억으로 다시 봉해 비밀처럼 가슴에 가만히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여름은 말 없는 페이스메이커입니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중심 선수가 우승 하도록 그 선수의 속도를 앞에서 조절해주고 주변선수들의 견재와 방해를 막아주는 숨은 공로자는 페이스메니커 입니다. 여름은 가을의 알찬 풍요로 달려가도록 페이스를 조절해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페이스메이커입니다. 마치 짐을 나누어지고 속도와 방향을 안내하면서 다가오는 가을의 멋진 등장을 만들어내는 거룩한 몸짓 같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서늘해진 공기로 인해 우리의 몸이 움추려들고 옷깃을 세우겠지만 아직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묻어난 여름의 훈기는 계절의 정체성을 웅변하듯 증거를 합니다. 고급열차의 좌석표를 소지한 승객은 초조하지 않으며 느긋하게 신문을 보다 문이 열리면 자기의 자리를 찾아 여유롭게 앉습니다. 가을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가을의 자리는 여름이 이미 예비하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의 추억을 가슴에 싣고 가을로 향하는 행복한 여행을 떠나봅시다.


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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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늘 행복하십시오. 글에 감명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풍효로운 가을을 맞았으면 합니다. 감사드리며. 10-08-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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