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해탄의 안개비가 내리는 이유는
이동식목사(무안읍교회)
짙푸른 바다 위로 어느새 하얗게 안개비가 내립니다. 올망졸망 섬들은 이방인들이 등장에 수줍은 듯 온 몸을 가린 채로 살짝 머리끝만 내밉니다. 이미 바다는 오리무중(五里霧中) 깊은 신비에 빠졌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먼 나라, 때론 알듯하기도 하고 정말 모를 사람들, 약간은 부담스러운 나라 일본으로 향하는 배가 바다를 가르고 달려갑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축구 경기가 벌어지면 가장 치열한 승부를 거는 나라, 아직도 지난날의 민족적 감정으로 인해 생각만 해도 미운나라, 여전히 과거사를 기록한 역사 문제나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나라를 향해가는 길을 하늘은 순탄히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조용한 적막에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이 바닷길로 음흉한 모습으로 노를 저어 왜적들은 우리를 찬탈하기 위해 왔었을 것입니다. 또한 전쟁의 수많은 전리품을 가득 싣고 포로를 끌고 이 바다를 건넜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끌려가던 노동자들이 탄광으로 군수공장으로, 꽃다운 소녀들이 두려움과 눈물로 건넸던 그 바다를 우리는 관광이란 목적을 가지고 지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쫓겨 가던 왜적들의 눈물과 피가 뿌려졌을 이 바다위에, 과거의 고통에 몸살을 앓던 정신대 할머니가 그리신 슬픈 그림이 물에 어립니다.
지금은 경제 분야의 교류와 문화적으로 에니메이션이나 한류의 열풍으로 인해 이미 익숙해져 버렷습니다. 그러나 수석가들이 좋아하는 돌중에 다른 성분의 돌이 박혀있는 석중석 처럼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역시 많은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 날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지금도 활동 중이라는 아소산(阿蘇山) 칼데라를 보기위해 산에 올랐습니다. 화산석으로 수목이 자라나지 못한 산등성은 마치 왕릉처럼 잔디밭이 되어 아름다웠습니다. 산 아래의 마을에 펼쳐진 들판은 우리나라와 절기가 같아 푸른 벼들이 힘차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화롭고 농사와 목축을 하는 소박한 농촌마을이 자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지금 마그마가 가마솥에 휘몰아치는 물살처럼 활화산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긴장을 가르쳐 주는 듯 했습니다. 이는 자연 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겸손하게 고백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듯 하였습니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다스리던 궁전이나 성들은 현대에도 위엄이 있습니다. 오사카성과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열도의 3대 성중에 하나 구마모토(態本)성이 있습니다. 성의 규모나 견고성이 대단해서 이 거대한 성을 축성한 구마모토를 최고의 축성자로 평가합니다. 이 성은 분명, 일본식성의 분위기가 있는 거대한 성입니다. 그런데 어딘가 우리와 친근한 모습을 품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올리는 축성방법이 우리와 비슷하고 성루의 처마는 마치 우리나라 전통 처마의 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성을 쌓은 기술이 전수되었음을 증거하는 입니다. 그러나 기뻐만 할일이 아님이 정신을 들게 합니다. 이 곳에 끌려와 무사들의 칼끝에 두려움 속에 성을 싼 그들은 누구였을까? 이름 모를 선조들이었을 것이라 는 생각을 하니 이 모습은 고통의 눈물,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설움이 돌이 되어 쌓여진 것은 아닐까? 마치 착취와 눈물의 결정체인 조상들을 만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왕인박사등을 통해 문화와 국보급 최고의 도자기 기술을 전수하였고 그들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여행지 일본에서 떠오르는 변함없는 태양, 수 백년 전 그날에도, 그리고 지금 우리조국 한반도에서도 떠오르는 일장기 속의 그 태양이 일본의 아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뉴스를 보니 한 한류스타의 죽음으로 그리고 월드컵 축구의 8강 좌절로 잔뜩 일본열도가 침묵에 빠졌습니다. 자꾸만 일본 티브이방송은 한국의 8강 좌절과 북한의 대패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위로는 삼는 듯 보입니다. 조심스럽게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참배를 반대하던 신사가 도대체 어떤 곳일까,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들렸습니다.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 만지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반질거리는 청동소의 빛나는 콧등, 각종 이름 모를 수많은 이 우상들 앞에 핍박과 박해 속에 신앙의 정결을 지킨 선배들의 순교신앙을 다짐해봅니다. 올해는 강제로 일본과 한국이 병합했던 수치스러운 경술국치의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 우리 후손들은 억압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도록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일본 땅을 돌아보고 조용히 돌아오는 현해탄의 바다가 슬퍼만 보입니다. 아직도 바다에는 안개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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