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봄을 찾아서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달력에 채워 져가는 시간의 봄은 이미 한참을 지나가건만 움츠리고 주춤 거리던 봄의 어깨가 이제야 풀려 일어납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춰진 화려한 생명의 에너지는 대지를 깨우면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어 밉니다. 얼굴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봄바람은 빨리오라 손짓하면 봄 손님을 강청합니다. 양지산마루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어오르고 스타트라인에서 숨죽이고 긴장하면 신호의 총성을 기다리던 진달래의 분홍빛 수줍음은 온 산 깊은 곳까지 불을 밝혀놓았습니다. 봄으로 향하는 분주한 차량의 발길들은 벌써 순백의 벚꽃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느 새 하늘을 덮어버린 하얀 꽃송이가 멋진 자태로 날리면서 내리던 봄날 오후, 이를 시샘하기라도 하듯 헐떡이며 달려온 냉기는 하얀 꽃잎사이로 진설(眞雪)로 내렸습니다.
예기치 못한 국가적 국난(國難)으로 온 나라가 긴장하는 봄날이 지나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자신감을 잃어버린 군인들, 사명을 잃어버리고 변명에 급급한 사람들로 이 봄이 가득합니다. 이 사고가 터진 날 온 TV방송사 하단에는 실종자명단과 구조자명단이 뉴스특보로 전해졌습니다. 가족들과 친지들, 관계된 사람들의 눈은 거기에 기록되어진 이름들을 보며 눈물과 아픔, 감격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봄은 희망입니다. 봄은 생명이며 출발을 선언합니다. 설레임으로 출발하려던 가슴을 잔뜩 얼려버린 4월의 춘설처럼 온 국민들의 마음이 무겁기만 하지만 그래도 봄꽃은 한 계절 여름을 향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변함없는 중요한 화두(話頭)는 회복입니다.
몸의 균형이나 신체의 기능들이 상실되어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들의 소원은 빠른 쾌유와 신체적, 정신적으로 회복일 것입니다.
삶의 중요한 현장에서 경제적인 충격으로 지쳐버린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 역시 경기회복과 사업의 번성일 것입니다. 더욱이 어울리고 더불어 협력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잃어버린 신용이나 이웃들은 가장 큰 자원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부모님의 권위가 사라졌습니다. 선생님들을 향한 제자들의 존경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른 사회 구현이라는 미명으로 어느 정도의 파괴나 상실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어둠 속에 한숨과 피가 섞인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신뢰가 회복되고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가 적실히 요청되기도 합니다. 에덴의 인류조상은 하나님과 부부간의 신뢰를 잃어버렷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복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회복이 없이 진행되는 미래와 내일은 굽어진 기초위에 건축물을 증축하는 것처럼 안정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실종된 행복과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심정으로 낮고 천한 곳의 샅샅이 찾아 나서시며 회복을 준비하셨습니다. 국난의 현장에는 오늘도 잃어버린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 동료 전우를 찾아 나서는 병사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기자들과 언론들, 그리고 유실된 무기를 찾아나서는 수색팀들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어느 덧 냉기와 함께 내리던 춘설의 흔적이 멀리가고 다시 봄의 햇살이 떠오릅니다.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님은 민족의 봄이 오지 않음을 노래하면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시인처럼 다가올 조국의 봄을 노래하듯 우리의 봄을 기다려봅니다. 꽃이 떨어진 떨기에 짙어진 잎사귀가 물기에 반짝입니다. 잃어버린 봄, 그러나 희망의 봄을 기다리며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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