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안개가 가득 내리던 새벽 강가에서
이동식목사(무안읍교회)
자욱한 땅 안개가 대지의 온기를 품고 저수지의 은빛 살랑거리는 물위로 미끄러지듯 흐릅니다. 갑자기 철이 들은 척, 유난을 떨며 스스로 세수를 마친 손자의 솜털에 맺힌 물기처럼 새 흙의 얼굴에는 생명의 물방울이 맺혀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시샘하는 겨울의 눈치를 보면서 새봄의 노래를 지어 불러봅니다. 어느 새 뒷산에 산보 가셨던 이웃집 할머니 옆구리에는 봄을 바구니 가득히 담아내려 오십니다. 하얀 눈이 내리던 하늘가에는 하얀 봄의 햇살이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은 감추는 계절이라고 한다면 봄은 내놓는 계절, 나오는 계절인가 봅니다. 겨우내 덮였던 커튼을 열고 감추었던 안방의 문이 열리듯 빛바랜 낙옆들 틈새로 땅속의 감추었던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깊은 산 나무 등걸 속에서 겨울잠을 즐기던 아기 반달곰도 깨어 일어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저 하늘 저쪽에서 노고지리가 달려오고있습니다. 이제 그들을 맞을 새로 차려진 잔치상을 양지쪽 새방으로 들고 들어섭니다. 기다림과 기대로 곧 입장할 주인공들을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생명으로 가득하고 희망이 일어나는 소중한 계절에 하나님은 우리도 살리며 희망을 세워가는 동산을 만들라고 권면하시는 듯합니다. 지난 밤 가로등 밑으로 흐르던 안개는 작은 도시를 새근 새근 잠들게 하더니 이른 새벽부터 봄 안개가 찾아왔습니다. 안개는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봄을 열어주는 전령사처럼 계절이 열리던 새 아침에 강변길을 달려봅니다. 무채색 물색 염료를 듬뿍 묻히어 금방 꺼낸 강 속의 깊고 하얀 가슴을 닮은 비단처럼 강물을 따라 비단안개가 쭉 펼쳐 있습니다. 저만치에는 더욱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아 부르는 소리에 이끌리듯 앞으로 달려가 봅니다. 역시 신비로운 손님이 벌써 앞서 달려갑니다. 마치 새봄을 환영하려 봄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 나온 환영객인 것만 같습니다.
안개는 지면 가까이에 작은 수많은 물방울 알갱이들로 뿌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현상입니다. 항공기나 교통에 관계된 기관들은 안개에 긴장합니다.
그러나 봄 안개는 아름답고 포근합니다. 깊은 산속의 무서운 기암절벽과 천년의 연륜을 담은 듯한 낙랑장송 들로 신비롭게 휘감으며 부드럽고 싱그럽게 연출됩니다.
안개는 생명을 간직한 채로 찾아옵니다. 강물이나 저수지 위로 끓는 듯 피어오르며 사람들의 마음으로 강가로 끌어 들이기도 합니다. 탱글탱글한 미세한 물방울이 연기처럼 내릴때 에는 거기에 자연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손이 들어있습니다. 모습은 생명을 향한 아름다운 어루만짐 같은 사랑으로 여겨집니다.
안개는 수줍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우고 소리를 죽이면서 웃는 덧니 난 소녀입니다. 안개는 항상 아침의 소망을 담고 신비로움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안개는 말이 없습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입니다. 다만 우리의 눈 앞에만 잠시 보일 뿐, 그 속으로 들어가는 누구든지 한 번도 밀어내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안개는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을 저 너머의 약속의 나라로 안내합니다.
안개는 깊은 산 높은 봉우리에 태평양보다 넓은 가슴을 그려놓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그 자리를 자기의 것이라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조금만 머물다가 이내 조용히 물러섭니다.
하얀 화면에 희미하게 한 남자가 그림자처럼 걸어옵니다. 그리고 선명해지는 그림자는 오늘을 향해 다가옵니다. 영화인들은 안개를 배경으로 인생의 그리움과 사랑을 그려냅니다.
글을 쓰는 시인의 펜 끝은 안개를 통해 자연의 숨소리를 적습니다. 의사가 청진기를 사용하듯 자연의 내면 깊은 곳,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카메라맨들은 순백의 순결함을 만나기 위해 한 밤중 촬영지로 떠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밤을 달려온 그들은 멀리 동이 터 오르는 미명 속에 안개로 가득한 호수 향해 앵글을 조절합니다. 금방 떠나갈 안개구름 손님이 머무는 그 순간을 자신의 마음에 찍어 오랫동안 보관합니다. 새벽을 채웠던 안개가 떠나고 커피 한잔 머금고 애써 그림움을 삭히는 작가들의 마음앵글 속에 솜털 같은 포근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안개는 침묵입니다 안개는 생략입니다. 복잡한 사람들의 변명과 야심도 소리 없이 잠을 재웁니다. 안개는 비밀입니다. 아니 안개는 설레임을 가지게 하는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봄날아침 만난 안개 속에 안겨서 인생의 시간을 계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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