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빔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영적 예복을
이동식목사(무안읍교회)
신년을 맞아 분주하게 시작된 날들이 벌써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새해가 만들어준 분주함을 뒤로 하고 동역자들의 모임에 소중한 외출을 시도 하였습니다. 길 가엔 푸른 생명의 희망을 노래하는 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힘 있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다른 색 다른 모양으로 덮여진 봄의 새 옷을 입으려 겨울의 두꺼운 옷을 벗어 내는 듯합니다. 달려가는 길가의 현수막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향을 찾아 주신 향우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남녀의 새배 하는 활짝 웃는 그림이 삽입 된 채 운전자들을 축복하는 듯 간간이 걸려있습니다. 벌써 2월 중순, 그러나 새해란 이 환영문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아마 우리의 마음 카렌다 안에는 음력 설날을 인정하는 시게가 따로 흐르고 있는가봅니다.
요즘 우리 복식이 더욱 편리해진 서양복장으로 바뀌었지만 설날이 되면 꺼내 입는 한복의 멋스러움은 한층 잔치분위기를 상승시킵니다.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설날아침은 부모님들의 사랑이 깃든 설빔을 입는 행복이 기다립니다. 아직 풀냄새가 가득하고 염색잉크와 나프탈린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설빔을 입고 나서면 셀레임과 자랑스러움으로 행복해집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집 저집 다니며 새배를 올리면 새로 만들어 허리춤에 맨 복주머니에 새뱃돈으로 두둑해지고 넉넉하고 마냥 행복했집니다. 단연 이날의 일등공신은 설빔입니다.
다양한 옷을 입고 사는 생물은 유일하게 사람입니다. 왜 인류는 이렇듯 다양한 옷들을 입었을까? 그리고 지역마다 민족마다 독특한 전통의 의복을 입는가하는 문화에 대한 질문은 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옛날과 근세,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의류를 상상하여 살펴보면 분명 다양한 문화적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의 변화와 기후의 특성에 의해서, 추운 지역의 사람들이나, 습기가 많은 지역이나, 또는 건조한 지역, 뜨거운 사막이나 온대 지역, 산간지역 해안 지역 등은 다양한 기후와 환경적인 영향을 따라 복장이 다릅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나 시대적인 유행을 따라서, 옷의 칼라나 디자인은 변화되고 발전하고 새로워집니다. 또 반복되고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민족별, 지역별로도 각기 다른 복장으로 구별되어지기도 합니다. 소수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독특한 칼라와 장식을 갗춘 민족복장을 고수합니다. 또 신앙에 따라서도 그들의 복장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색동옷이 미신을 따르면서 오방색을 가늘고 길게 이어서 기원을 담아 돌이나 명절에 앞날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또 의복을 만드는 재료의 생산에 의해 식물성 옷, 그리고 가죽이나 모피등로 다양한 옷들이 나타납니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그리고 유행에 따라 칼라나 디자인이 새롭고 다르게 변형됩니다. 요즘은 의류도 과학이락도 말할 할 만큼 기능성 옷이 첨단의 과학적인 연구와 소재 개발로 등장합니다. 특히 방수나 보온등 기능을 가진 등산복이나 스포츠의 종류별로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의복으로 계속 개발되어집니다. 청바지는 1800년 중반 미국서부의 금광에서 쉽게 헤어져버리지 않는 천인 “진”으로 만들어진 작업복이 힘의 상징으로 나타나 한 시대에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기능성 의복은 더 나아가 사람의 체형을 교정하고 치료의 목적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학자들에 의하면. 옷의 발생과 발전을 일반적으로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이성을 유인하려는 목적으로 발전된다고 합니다. 마치 점점 더 몸매의 매력을 표현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려는 옷들로 디자인 되어가듯이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종교적 장식, 신분적 장식, 그리고 아름다워지려는 심리를 위한 장식으로, 결혼예식이나. 군복이나 학생복처럼 소속을 나타내고 활동을 위한 실용적인 옷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는 여러 가지 의복에 관계된 사건들이 진행됩니다. 물론 새로운 의복이 등장할 때마다 분명한 영적 의미와 역사를 동반 합니다.
예컨대 에덴동산의 벌거벗은 아담과 화와, 그리고 그들이 직법 만들어 입은 천연 나뭇잎소재 의복,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입혀주신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주신 옷 속에는 죄에 대한 죽음의 댓가가 들어있습니다. 성막에서 헌신하던 제사장들의 복장은 마치 성경을 만나는 듯한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던 요셉의 자색옷, 그리고 형들에게 찢겨진 망가지 옷, 그가 벗어던진 보디발의 집에서의 옷, 그리고 애굽의 총리의 관복, 사람이 태어나면 벌거벗은 몸이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옷들을 입으면서 살게 됩니다. 어린 아이 때 깜찍한 옷, 청년시기에 늠름하고 아름다운 옷, 그리고 중년의 점잖고 편리한 옷과 어르신이 되면 입는 품위의 옷들입니다. 그리고 떠날 때 마지막 입는 수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마치 세탁소의 옷걸이가 그 옷을 번갈아 입듯이 때론 신분이나 인생길의 형편에 따라 바꿔 입고 있습니다. 옷이 날개라고 합니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 같은 옷이라도 어떻게 입었느냐에 따라 단정함도 인격도 완숙미가 다르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소아시아 라오디게아 교회는 화려한 장식을 한 고급소재의 옷을 입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벌거벗었다고 보십니다. 사대교회는 옷을 더렵히지 않은 사람 몇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옷을 바른 신앙적 인격이 고백되어진 행실이라고 말합니다. 점잖은 설빔을 한 벌 마련하는 마음으로 영적 거룩한 천국잔치 예복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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