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만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동식목사
무안읍교회
대지를 달궜던 초여름 햇살의 열기로 목마름에 애타던 대지의 갈증을 식혀주는 단비가 하늘문을 열고 내립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에겐 잠자던 과거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마치 서양음악 “Over the rainbow”나 우리 문학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동서양을 망라하여 빗속에는 추억과 신비한 감정이 흐릅니다. 비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몇 일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그야말로 30년 만에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1시간가량 먼저 도착하여 친구들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6월 가뭄을 적시는 비가 내리던 날,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전국에 흩어져 살던 친구들이 공식적인 30년 만에 만나는 이 역사를 위하여 모두 설레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이 한명 두명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반가움과 오랜 세월이 만든 어색함, 그리고 서먹 거림, 궁금함이 교차하더니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단숨에 격이 없는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까만 교복을 입고 3년 동안 한반으로 고교시절을 보낸 사나이들이 어느 덧 복부비만이 되고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습니다. 30년이란 세월은 친구들의 외모을 많이 달라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사업을 성공해서 외제승용차에 기사를 데리고 나타나고, 제법 높은 공직에 있는 친구들도 있었으며, 그리고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친구, 그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친구들, 사업에 실패해서 지친 친구등, 그러나 그 30년이 만든 골짜기와 어색함은 5분도 채 넘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준과 벽을 뛰어 넘는 벽도 기준도 다 허물어져 버리고 까만 교복으로 딩굴던 철없던 꿈 많던 고교시절로 우리는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습니다.
예상 했던 대로 어떤 친구들은 첫눈에 금방 이름까지 떠오르지만 어떤 친구는 한참 후 자기 이름을 들어야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름을 부르고 나면 그 친구의 옛날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30년 동안 잠시 커튼에 가려졌던 학창시절이 그대로 열리는 것 같은 생생함이었습니다. 그 시절은 무협영화와 고교 영화 서부영화가 붐을 일으키던 시대였습니다. “황야의 무법자”, 성룡이 주연한 홍콩 영화와 “취권”. 그리고 고교생을 주제로 한 “고교얄개”등을 2편씩 상영하는 3류 극장 할인표가 학교에 보내지면 학교에서 단체로 찾아가서, 오징어냄새와 곰팡이냄새가 섞인 의자에 앉아, 스크린에 비 오듯 그려지는 낡은 필름자국과 찍찍거리는 스피커였지만 정말 짜릿하고 흥분되는 문화생활이었습니다.
그때는 안보 정신이 투철해서 학도 호국단이 결성되어 있었고 敎鍊이란 과목이 있어서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요대를 차고, 그럴 듯하게 만든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노라면 마치 군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목총도 좋았지만, 열병과 사열을 할 때면 M1실총을 들고 행진하던 3학년 선배들이 부러웠습니다.
한 친구가 자취하던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라면을 끓여서 밥을 말아 먹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시절 많은 친구들이 광주로 유학 온 처지여서 학교 근처는 그야말로 하숙과 자취하는 학생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는 호사스럽게 하숙을 하므로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것은 역시 자취였습니다. 반 평 남짓한 부엌엔 연탄아궁이와 그 옆에 김치를 찬통, 쌀통, 그리고 식사도구와 취사하는 곤로가 있었습니다. 물론 냉장고도, 가스 렌지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방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쟈크가 달린 옷장과 이불장이 있었고 다리를 끼웠다 뺄 수 있던 책상만 있으면 자취 준비 끝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언제든지 다른 집으로 이동할 수 있는 비상용 자취방이었습니다. 간도 안 맞는 음식, 색깔이 나지 않은 반찬, 그러나 모양은 험했지만 너무나 맛있었던 식사였습니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시장에서 꼬막을 잔뜩 사다 한 솥을 삶았는데 고막이 모두 다 입을 짝 벌려 버렸고, 맛도 없이 먹었던 애기,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꼬막 얘기가 제일 재미있습니다. 주황색 공중전화기 앞에 항상 북적거리던 자취생촌, 그 자취방은 우리들의 꿈이 자라고 있었던 위대한 산실이었습니다. 소풍날, 사진관에 들려 카메라를 빌리고 나중에 한 장에 몇 백원씩 받고 사진을 나누어갖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어느 덧 자녀들 이야기로, 그리고 시국과 경제문제로, 바뀌면서 밤이 깊어갔습니다.
오랜만의 만난 친구들, “다시 만나자. 다음에는 오늘 못 본 친구들 다 찾아서 만나보자.” 서로 다짐하고 헤어지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싱그럽고 푸르름의 그 시절의 설레임을 가슴에 다시 가득 충전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다시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다음 만남을 기다려 봅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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