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아쉬움처럼 얇아져버린 마지막 달력이 쓸쓸한 벽을 덩그러이 지키고 있습니다.
쌀쌀해진 공기를 가르며 가로수 길을 걸어 봅니다.
길 가의 가로수들에는 이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덕 위의 한 나무는 신기하게도 잎사귀가 그대로 달려 있었습니다.
"이 잎사귀들은 가지를 떠나기가 아쉬워 미련 때문에 머물러 있구나?"
나의 말을 들은 길 벗이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이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릴 준비와 힘이 부족하여 즉 비료 성분과 떨켜를 만들지 못해 그대로랍니다.
" 낙옆 이란 주로 활엽수 중에 잎자루와 잎몸 사이에 이층(離層)이라는 특수한 세포층 즉 떨켜를 만들어 놓아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된다고 합니다.
활엽수이면서도 낙엽이 되지 못한 경우는 양분이 부족하여 떨켜라는 기관을 만들지 못했거나 만들었다 해도 그 떨켜를 움직일 에너지(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도 우리는 과거와 옛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아직도 털어버리지 못한 짐들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성품에 성숙한 떨켜와 성숙한 인격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누군가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용서와 섬김보다 꾸짖고 책망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떨겨를 만들거나 낙엽을 떨어뜨리는 힘이 적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 우리 교회 청년대학부가 여수 애양원으로 친교대회를 다녀왔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앞에 두고 원망하기보다
도리어 열 가지의 감사를 드렸고 그 원수 공산주의자를 양자로 삼았던
위대한 한 성자를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날인 주일 우리교회 설립감사주일 강사로 모신 목사님을 통해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를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월요일 교역자회 모임예배에서 손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하나님! 연이어 손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그분의 넓고 큰마음은 나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져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분은 평화를 이룬 참 예수님의 제자이셨습니다.
멋진 열매는 그만한 성숙한 넓고 큰 인격적 힘이 있어야 가능한 모양입니다.
남을 포용하려면 그 사람의 상처와 허물까지도,
심지어는 나를 찌르던 가시까지도 안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먹끼리 마주하면 다투게 되고, 주먹을 보자기로 받으면 도리어 감싸주게 되고
보자기를 보자기로 맞이하면 따뜻하게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의 예배 속에 헌신이, 우리의 봉사 속에 섬김이,
우리의 믿음 속에 사랑과 소망이 가득해야 할 텐데...
다른 냄새가 진동하는 돌연변이처럼 변형된 십자가를 들고 이것이 진리라고 외치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합니다.
마치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레일소리의 카운트다운에 진리를 찾아 떠난 구도자의 초조함 같습니다.
/// 베리타스(VERITAS,진리)를 찾아서 // 높아진 하늘에 나부끼는 긴 비단 / 염색장(染色匠)의 손과 / 태양의 열을 담아 삭아진 빛깔 / 흐르는 시간 위에 쪽빛 향을 품었다 / 싸늘한 대지의 체온은 / 붉은 단풍으로 다시 뜨거워지고 / 청자 빛 하늘을 비틀어 짜면 / 푸른 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다 / 솜털처럼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 가을 색 짙은 공기의 빛깔은 / 하늘과 들판을 점령하고 / 베리타스를 찾아 /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레일은 / 탈피한 허물만 들고선 나그네의 마음은 / 초조해져만 한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치 연극를 마치고 무대를 떠나는 인생처럼 하루의 석양을 주시고 한 해의 끝자락을 주셨습니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던 세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고 했습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우리의 삶의 역할을 '무대의 배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극이 끝나면 커튼콜(curtain call)이란 것이 있습니다.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관객들은 찬사와 환호의 표현으로 박수를 보내고 그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냅니다. 출연자는 감사의 인사로 보답하거나 앙코르 곳으로 답례합니다.
커튼콜은 그 공연의 성공여부를 가늠하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전통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협연 무대에서 기립 커튼콜을 8번이나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연극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지고 무대의 불이 꺼진 뒤 감동을 담은 박수소리의 주인공이면 좋겠습니다. 석양이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가는 계절, 은은한 커튼콜의 주인공이고 싶습니다. (12월 기독교호남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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