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만난 소풍 인생
수줍어 붉게 상기된 볼을 애써 감추는 어설픈 처녀의 몸짓인양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초가을 아침의 일출이 시작됩니다.
잔잔하던 바다도 하늘을 담아 덩달아 붉어집니다.
가을로 가는 길목의 고요한 아침 바다는 지난밤 밀물처럼 왔다 가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둔 흔적으로 새 역사가 열립니다. 부리 끝에 아침 태양을 머금은 갈매기는 아침 식사로 분주한 종종걸음 발자국을 백사장에 그려놓습니다.
늘 새로운 것에 익숙해진 아침, 지난밤 바닷가에 말없이 다녀간 그 누구의 사연도 그리워하지 않고 먼 바다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 여름의 마지막 자락을 미련 없이 놓아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분주히 앞만 보고 달려온 일상에서 용기를 내어 하룻밤 일탈의 시간을 갖습니다. 서해안의 조용한 펜션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소중한 교육의 현장입니다. 움켜쥐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굳어진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보냄과 놓아줌을 배웁니다. 온 바다를 채우고도 남을 듯 가득했던 지난 밤 바닷물들은 텅 빈 백사장만 드러내며 다시 쓸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에 넉넉함으로 찾아와 행복한 향기를 남기고 떠나갑니다.
흐르는 물결 위로 여름이란 계절도 미끄러지듯 미련 없이 지나갑니다.
밖으로 이어지는 한없는 세계를 나의 캔버스에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어집니다.
의미 없이 지나간 물결이 바윗돌을 부서뜨리고 자갈을 잘게 쪼개어 백사장 하얀 모래알로 말없이 흔적을 남겨 놓았듯이 지나온 내 발밑에 남겨질 흔적에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어리석은 우리들은 늘 그 자리에 오늘이 영원할거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토록 지루하다고 생각되던 순간도 어느덧 지나가 버리고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마치 해변의 고둥들이 지나간 흔적처럼 공평한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생명은 동일한 선물이지만 각자 만들어서 남기는 작품은 재 각각 다른 모습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숙소 가까이에 초라한 단칸집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불행한 시인이었던 천상병 시인의 생가를 만들어 보존 했다기에 기대하고 달려간 발걸음이 힘없이 실망감으로 가득합니다. 두 평 남짓한 단칸의 낡은 슬레트 지붕,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는 덩그러니 깨진 이 나간 온기 잃은 항아리 몇 개뿐. 그가 남긴 거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내 머리 속에서 '귀천'이라는 그의 시가 맴돌 뿐입니다.
사진에라도 담아 그분의 감성을 공유해 보고자 이리저리 앵글을 잡아 보지만 빛바랜 실상은 도리어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천상병). 조용히 다가왔다가 떠나간 지쳐버린 한 시인의 자서전 같은 시 한 줄에 나의 오늘, 내 자신의 인생이 투영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어색한 길 위를 걸어가는 소풍 나온 삶이 아닐지?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소박한 방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잠시 하룻밤만 머무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은지... 차에서 몇 번씩이나 옮겨 놓고서야 준비가 끝났습니다. 동네 이웃처럼 편안한 얼굴의 주인 내외분은 마치 친척집에 다니러 온 듯 편안함마저 들게 했습니다. 거실 창문 밖으로 바로 바다가 펼쳐져 보입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잔디밭이 마치 에덴의 동산과 같은 바다 앞에서 꿈처럼 행복한 하룻밤의 평화를 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침 창가에 찾아온 일출은 우리를 다시 아무런 기약 없이 길다란 바닷길도, 오르던 계단도, 창밖으로 바다를 잡을 듯 아름다운 거실도 뒤로하고 떠날 채비로 분주하게 했습니다. 다정스럽던 주인 내외와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오면서 천상병 시인의 “인생이란 소풍 같다”는 표현에 공감이 들었습니다. 소아시아를 향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행복하고 분주한 나그네 순례자의길 ,사도의 길, 순교의 길을 걸어가며 바울이 남겼던 고백처럼 이제 우리들에게도 떠나야 할 기약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니 떠나 보낼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젊은 날의 야망도 접어 두고, 때론 소중한 가족들도 떠나 보내고, 이젠 가끔 아들 집, 사위집 한번 들러도 손님처럼 만나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장모님이 오셔서 귀한 손님이라 생각되어 잘 대접해 드리려고 애를 썼으나 부인은 자기 어머니 오셨다고 편해지려고 하더라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만남의 현장에서 손님처럼 긴장했던 시간들을 이젠 편한 친구로 대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수만 철새 도래지 앞을 지나옵니다. 철새들의 새까맣던 그 화려한 군무로 가득하던 하늘은 텅 비어 있습니다. 소풍을 나온 길 위에서 잠시 오늘의 인생을 뒤돌아봅니다. 소풍이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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