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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향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글쓴이 : 홈지기     날짜 : 19-09-12 21:30     조회 : 1301    

고향으로 향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요하게 흐르던 계절의 열차는 가을역으로 향하여 달려들어 옵니다. 그러나 궤도로 진입하는 열차가 흔들리며 들어오는 것처럼, 가을의 초입을 열고 들어서는 시간의 열차는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섭니다. 잔뜩 긴장시켰던 태풍 ‘링링’이 한 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깊은 상처들을 남긴 채 벌써 멀리 떠나 버렸습니다. 아직도 잿빛 하늘은 얼굴을 펴지 않은 심통 난 표정이지만, 우리의 갈망은 저 구름 위로 더 높아진 가을 하늘에 고개 내밀어 펼쳐질 천고의 계절을 기다립니다. 들 뜬 들녘과 과원은 살이 찬 토실한 실과들이 고개 내밀다가 뒤 따라 몰고 온 후폭풍에 놀라 비틀거립니다. 추석명절이 다가오자 집 앞에 대형 마트는 연일 북적되는 인파와 황금빛 보자기에 담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명절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에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 때를 맞아 고향으로 어른들에게로 친지들에게 달려가 문안하고 정을 나누게 됩니다. 사실 어딘가를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부담입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나 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때 부턴가 그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분들이 줄어들고 결국은 없어집니다. 분주한 차량과 사람들을 보노라면, 왠지 할 일없이 버려진 사람처럼 외롭고, 심심하고 쓸쓸해지기에 가을바람이 겨울바람처럼 마음을 아리게 파고 듭니다. 모처럼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거친 태풍이 지나갔건만 별일이 없었던 듯 어머님 생전의 그대로 구석구석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얇은 것 몇 가지, 여기 저기 태풍에 흩날려 날려 제자리를 잃고 울타리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이미 정리 하셨을 텐데 주인 없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머님 앉아 계시던 툇마루와 맛난 음식 만들어 금방 들고 나올 듯한 주방에는 정적만이 흐릅니다. 빈집 거실 문틈으로 날마다 들어왔던 오후의 햇살은 닳아서 비오는 필름처럼 얼룩진 하늘을 비추어 줍니다. 건너편 벽엔 어머니가 걸어두시고 좋아하셨던 학사모 쓴 아들의 사진에도 세월의 먼지가 덮였습니다. 옆집 어른이 집 마당 가장자리를 파고 옥수수를 심어 놓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신다면 몇 개 꺾어다 금방 삶아 주셨을 텐데, 허락 없이 손댈 수 없는 조심스러운 마음, 보기만 했습니다.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보다 가끔 돌아봐 주시고 뭔가 심어 놓으셔서 무어라 말도 할 수 없고, 오늘 나의 고향집에서는 왠지 낮선 어색함을 한 짐 지고 나왔습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그 때가 좋았고 잘 할 건데, 후회 섞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들녘에는 고개 숙인 알곡들이 황금물결을 치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메뚜기 잡던 들녘을 돌아서 고향을 떠나오는 길,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마치 선회비행을 하듯 춤을 추며 거기서나마 나를 알아봐 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누군가를 만나면 고향과 나이를 물어봅니다. 그런데 고향을 묻는 물음과 나이를 말할 때 언제나 느끼는 감정은 나의 과거의 옷을 벗어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의 민낯의 현장, 고향의 언덕에 오르노라면 언제나 영락없는 어린 초동시절 그 코 흘리게 철부지 소년인데 고향집을 떠나 올 때면 어느 새 백발의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밤에는 묶은 김치에 돼지 목살 듬성듬성 크게 썰어 넣어 아궁이에 끓여준 어머니표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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