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디에 서서 어디를 향하여 사는 것일까?
지난여름 그렇게도 뜨겁게 달구어진 구들장 같던 바위 사이에 층꽃이 보랏빛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무더위에 말라서 마치 막대기처럼 말라버렸던 줄기의 생명줄을 타고 흙먼지모아 터전을 삼고 뿌리를 내려 새벽마다 맺혀진 이슬을 모아 목을 축여가며 각고의 시간을 보낸 뒤 이제 보란 듯이 보랏빛 희망을 피워낸 것입니다. 산하로 펼쳐진 들녘은 숙련된 이발사의 정성들인 손길이 지나가는 듯 가지런하고 환하게 수확의 의식을 진행하는 듯하고 청잣빛 하늘 끝자락까지 내려온 솜털구름은 은빛 억새를 어루만지며 어색한 군무를 즐기고 있습니다.
산 아래 온 세상은 가득 가을로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모처럼 올라선 산정에서 보는 세상은 산 아래에서 보는 세상과는 동일한 곳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아마도 동일하겠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감동은 분명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른바 사진작가들은 앵글이라 해서 보는 각도를 중요시합니다. 부부간에도 친구지간에도 서로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해심도 달라지고 깊은 그 마음도 읽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고향 어르신이 들려주신 출처를 잘 모르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오는 봄날 오후, 양지바른 마루한쪽에 집주인이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습니다. 옆에서 졸던 고양이가 주인의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습니다. 사랑하는 주인은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 사랑을 표현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고양이는 이상을 쓰고 고통을 느낍니다. 주인이 미워집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유를 알고 보니, 고양이가 주인 쓰다듬는 방향반대로 앉아 있으므로 쓰다듬을 때마다 머리를 거꾸로 잡아 올리는 것 같이 당겨져서 아픈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고 한가지입니다. 주인 손 방향을 내가 돌아앉으면 행복해집니다. 우리 인생은 위치선정이 잘못 되었거나 방향설정이 잘못되어 관계가 소원 해지고 오해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의과 대학장을 지낸 명의로 알려진 김성진박사의 에피소드입니다. 어느 날 그에게 유명한 화가 한분이 환자로 그에게 찾아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술도 잘되었고 모든 경과도 좋아 너무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화가는 그림을 한 점 선물 했습니다. 그분의 그림은 많이 알려진 그림이었고 그 그림이 귀하고 대단한 가치도 있음을 알았기에 그 선물을 고마워하며 가장 좋은 자리에 걸어두고 그림을 볼 때 마다 좋았습니다. 사실 이 그림은 좀 어려워서 깊은 뜻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불때마다 좋았답니다. 그러던 중 그 화가가 김박사님을 찾아와 자신이 선물한 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거꾸로 걸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려놓으니 더욱 멋지고 더 내용이 이해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을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늘 보았던 동네가 아닌 산 위에 올라 바라보며 더욱 벅찬 감동과 행복했던 마음을 붙들고 다시 그 자리로 내려옵니다. 살아오면서 세상에 가려서 못보고 너무나 크므로 가까이서 다 보지 못했습니다. 내 그릇이 작아 다 담지 못하고 늘 불평하던 불행한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 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 밑에 서서 행복한 노래를 더욱 목소리를 높여 불러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