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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낯선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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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손순자
날짜 : 08-11-02 19:09
조회 :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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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낯선 경험
손수진
까뮈의 ‘이방인’에는 “태양이 눈부셔서 살인을 했다”던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배경은 순전히 가을 탓이다.
가을 햇살이 좋았고 토요일 오후의 모처럼의 시간의 공백 탓이리라.
“산에 갈라우?”
A는 B에게 문자를 날렸다.
“좋지요.”
여자 셋은 조우를 하고, 여기서부터 임의적인 호칭을 정해야 할 것 같다.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입 밖에 낸 적 없지만 또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대장과 대원.
여자 셋은 대장의 차에 올랐고, 부릉~ 출발을 했다.
차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과히 경이로우리 만치 가을에 맞는 너무도 귀에 익숙한 경음악의 선율이 흐른다. 산과들엔 억새가 손을 흔들고....
용천사, 오솔길을 걸으며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다.
대장: 낙엽이 너무 좋지?(글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임의적인 경어생략)
대원2: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하나님께서 지난밤 이 길 위에 낙엽을 뿌려 놓으셨지
일행은 깔깔거리며 산길을 걸었고, 꽃이진 뒤 잎이 나온 꽃무릇 잎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푸른 물결로 출렁인다.
어느 틈엔가 대장과 대원의 서열이 정해졌다.
그래도 용천사 등반을 많이 했다는 대장이 단연 앞장을 섰다. 그리고 대원1과 대원2는 그 뒤를 따랐다. 누가 정해준 순서는 아니었지만 그 순서는 산을 내려올 때 까지 바뀌지 않았다. 한참을 가파른 산길을 오른 후 능선에 지어진 정자에서 대장이 가지고 온 자스민차와 과일을 먹으며 이마에 땀을 식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아~ 좋다’를 연발하며....
대장이 등에 지고 온 배낭 속에 귤을 꺼내먹는데 뜨뜨미지근하다.
솜옷까지 입고 왔다니. 거기다가 차를 담아온 보온병과 등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로 그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감사하며 먹고 또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 연신 하하호호 무슨 이야길 했는지 잘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한 토막을 여기에 옮겨본다.
대원1이 폰에 찍어진 아들 사진을 보여준다. 목욕을 하고 나온 7살 아들이 메리야스만 입은 채 피아노 앞에 서 있는 조금은 섹시한 사진이다.
대원1:이 사진을 집에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뒀는데 이눔이
“엄마, 창피하니까 화면 바꿔요”
“괜찮아 음경이는 안보이잖아” 했다는 것이다.
대원2: 은경이가 아들 여자친구가? 하고 묻자 대원1은 펄펄 뛰며 어머어머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하며 반문한다.
대원2: 왜?!!!
대원1: 음경이라니까 음경
대원2: 음경이 뭐꼬?
대원1: 음경도 몰라 음경? 남자는 음경이고 여자는 음순.
그제야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은 대장과 대원2는 배를 잡고 뒤집어 진다.
대원2: 어머 그걸 음경이라 그래?
대원1: 그럼 뭐라 그래?
대원2 고추라던가, 거시기라 그러면 되지 음경이 뭐꼬 음경이....깔깔깔
세 명의 여자는 도토리처럼 대굴대굴 굴렀다.
말의 요지인즉슨 대원1은 아들의 거시기를 음경이라 가르쳤고, 그 아들은 창피하니 삭제시키길 요구했고, 그 말을 잘못 알아들은 대원2는 음경을 은경이라 알아듣고 그것이 그 아들의 여자친구냐고 물었던 것이다.
또 대장이 무어라 말하자
대원1: 장래식을 한다고?
대장: 무슨 장래식이여? 腸 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대원2: 한국말이란 띄어쓰기를 잘 혀야 혀. 또 킬킬킬
그렇게 웃고 떠들며 이름모르는 나무에는 이름을 붙여주고, 나무에 홈이 파진 곳에 흙이 들어있으니 작은 풀을 뽑아 나무속에 심어 놓고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또 깔깔.
‘나발봉’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우리가 나발봉에 가서 나발을 불어봐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앞장선 대장의 뒤를 따라 나발봉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갈수록 길도 아닌 것이 길 아닌 것도 아닌 길이 계속 이어지더니 대장은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대원1: 뭐여? 우리는 대장만 믿고 따라왔구만.
대장: 아무래도 아닌 것 같어. 저기 보이는 저 능선으로 가야겠어.
멀리 능선이 보이고 능선 위 나무 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인다.. 대장의 말은 곧 법이므로 우리는 산허리를 가로질러 길도 없는 길을 나뭇가지를 헤치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낙엽 쌓인 길은 미끄럽고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다(조금 과장)돌멩이가 한참을 굴러간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대장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대장: 저 능선 까지 각자 알아서 가도록......
대원들 모두 아무 말 없이 능선을 향해 기어갔다. 간신히 도착한 능선에는 길이 있겠지 했는데 이곳역시 길도 아닌 것이 길 아닌 것도 아닌 길 위에 낙엽만 수북이 쌓여있다.
그때부터 대장은 혼자 내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오라는 말도 뒤를 따라 오라는 말도 없이...
그 뒤를 대원1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만 내며 걷고 있다. 간혹 뒤를 돌아보며 “빨리와~”하고 소리 지른다. 사람들과의 간격은 앞사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거리. 대원2는 빠르지 않는 걸음으로 이 낯선 경험을 마음으로 즐기며 걷고 있다. “설마 오늘 중으로는 들어가겠지”하는 여유를 가지고....그렇게 얼마를 내려왔을까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다. 보이는 것은 천지가 산과 나무뿐인데, 잘 깎아진 묘가 몇 개 보인다. 그곳에서 대장은 멈추어 있다.
그리고 연신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길을 찾아 헤맨다. 그래, 대장이라 자리가 저런 것이구나. 대장이든, 선장이든, 목자이든 앞장은 선다는 것은 저런 책임감이 동반되는 것이다.
앞사람의 발자취만 따라가는 것이야 뭐가 어렵겠는가. 지도도 없이 길을 찾아 간다는 것이 어렵지. 더구나 대원들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래서 雪 위에 발자국은 함부로 남기지 말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그 발자국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암튼, 묘가 있으니 분명 멀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있으리라 믿고, 길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마을이라기보다는 집이 한 채 있다.
아래까지 내려와서 대장은 컹컹 개가 짖는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대원1과 2는 나무 밑에 철퍼덕 주저 않아 또 히히덕거린다. 배낭 속에 귤을 꺼내 먹으며....
목이 마르던 차에 먹는 귤은 시원하다.
대원2: 이 귤은 뜨끈뜨끈 안하네?
대원1: 그려... 또 깔깔
황당한 표정으로 나타는 대장
대장: 여그가 불갑사 근처랴!!!!
대원들: 잉?!!!
난감하다. 차는 용천사 입구 주차장에 있는데....
시간은 4시 가량, 그나마 해지기 전에 마을 쪽으로 내려온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정확히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불갑사 입구까지 가려면 걸어서 30분 가령가야 한단다.
일단 걸어서라도 이곳을 빠져 나가자는 대장의 말에 가을 길을 걸었다.
대장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걱정되겠지만 대원들은 히히 낙락이다.
가을 오후의 햇살이 아직 환하게 내리비치고, 노란 산국이 그 진한 향기를 천지에 흩뿌리고 있다.
대원2는 이 낯선 경험이 내심 흥미롭다. 언젠가 용천사에서 불갑사쪽으로 한번 넘어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도 한바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용천사에서 불갑사 쪽으로 내려오긴 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조금 걷다가, 대장은 생각 난 듯(여기서 또 한사람은 대원3으로 하자)대원 1에게 전화를 명령했다
대장: 오늘 대원3이 용천사에와서 단합대회를 한다고 들었다. 아직도 용천사 근처에 있는지 확인하도록.
대원1: 엽떼여? 아직도 용천사 라고라~ 거시시 머시기 여차저차...
대원3: 거가 어데요?(그렇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이것은<<칼의 노래>>를 쓴 김훈의 버전이다 내 맘대로)
대원1: 잘 몰것어유
대원3: 보이는 게 뭐가 있소?
대원1: 배추밭이랑 감이랑....푸히히히(대충 통화내용은 그러함)
대장: (듣기에 난감했는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정확한 주소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모두 묵묵부답.
그때 마침 우유 배달하는 차량 같은 작은 용달차가 운전수 까지 세 사람을 태우고 휙 달려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었지만 더 이상 탈 곳이 없다는 이유로 휙~ 지나치려하자 대원1이 소리친다.
대원1: (달려가며)아자씨 길 잠 물어 볼라고 그러요.....
용달차는 조금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딱한 사정을 듣고 불갑사 입구까지 태워다 준단다. 일행은 용달차 짐칸에 올라타고 또 하하호호 재미져 죽겠다는 듯 폰으로 증거를 남긴다면 사진을 찍는다.(못말리는 아짐씨들)
불갑사 입구에서 용달차 주인에게 허리 꺾어 감사를 표하고, 그곳으로 오기로 한 대원3을 기다린다.
대원2: 대장, 차나 한 잔주시오. 또 낄낄
마을입구 정자에 앉아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자스민차로 땀에 젖었다 식어 으슬으슬 추운 몸을 녹이고 있자니 대원3의 차가 나타난다.
죽은 오라비를 만나면 저리 반가울까. 차를 보자 대원1이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 반나절의 일을 이야기하며 또 낄낄...
대원3의 출현으로 우린 그 골짜기에서 벗어났고, 그의 안내로 국화가 만발한 곳에서 산체비빔밥까지 먹고(실은 우리가 대접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의리의 싸나이가 밥값까지 깔끔하게 계산을 했다.
이건 비밀인데 대장과 대원1은 주머니에 만원씩 담아왔단다. 대장이 몇 번 물었다. 지갑을 들고 왔느냐고. 다행이 대원2는 지갑을 챙겨왔다. 처음엔 그 의도를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장은 나름대로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만일 여기서 차가 없으면 용천사 까지 택시를 타야할 텐데. 택시비를 얼마를 부를 것인가? 자기 주머니엔 달랑 만원이 전부인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대장은 임무를 완수했다.
그렇게 우리의 의도되지 않은 산행은 끝이 났고, 오래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미소 짓게 할 것이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내려온 그 마을 뒷산이 막가파의 소굴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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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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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잼나게 실감나게 글을 적어 놓으셨네요.
역시 손시인님은 달라 ㅋㅋㅋ
추억만들기에 동참하고 지금도 그날 그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글을 읽으면서 배꼽이 빠지는줄 알았어요.
손수진 시인님 멋져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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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3 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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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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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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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3 1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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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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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왜 이리 재미있을까요??
읽으며 너무 웃어 눈물이 다 나네요.
엔돌핀 팍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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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5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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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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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호칭을 무어라 부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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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5 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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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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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8년 11월 1일 맑음 으로 시작하는 일기구만요. 참으로 일기를 써 본 기억이 오래됩니다. 수고들 많았구요.산에 오르는 기회가 잦으면 그런 에피소드도 많이 발생한답니다. 산은 추억만들기의 명수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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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8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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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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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감사드립니다 변집사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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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10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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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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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짬을 내서 들어왔더니....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시는 군요....쌩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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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24 1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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