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단풍이 전해준 마음 속 편지
이동식목사

입동의 도래를 선포하며 겨울바람이 불어옵니다. 더 매서운 맛을 보여 주겠다, 벼르기라도 한 것일까? 모아둔 풍선을 터뜨리며 수줍던 붉은 단풍의 얼굴을 더욱 붉어지게 만듭니다.  계절이 바뀐게 분명합니다. 소독 냄새가 덜 가신 외투가 어느새 무게감이 없어지고 깃털처럼 포근해집니다. 신경을 쓰면서 세운 옷깃 틈 여린 피부를 겨울이 자극합니다. 찾아오는 새로운 손님은 어느덧 심장 깊은 곳에 쓸쓸하고 아련함으로 채워집니다. 에어컨의 리모콘을 찾던 손길이 온풍기 스위치에 손을 댑니다. 시원한 창가보다 아랫목에 정감이 갑니다.
자꾸만 움츠러 들려는 마음에 활기를 찾으려 동역자들과 자연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축제 중 하나는 국화축제. 그래서인지 이제는 국화축제가 안 열리는 지역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한송이의 크기가 사람 얼굴보다 큰 국화에서 안개초 같이 작은 국화. 넓은 잎부터 가늘고 얇은 잎새, 자연의 조화와 창조주의 섭리는 너무나 오묘하고 신묘 막측합니다. 어떤 국화는 한 그루에서 수 백송이 꽃을 피우고 각양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시회의 대부분은 국화로 작품(분재)을 만든 분들의 작품이 많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솜씨구나! 그 작품 밑에 사진과 함께 적혀있는 작가들을 보면서 그 작품에 매료 되었습니다. 동료의 말대로 경의가 표해질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국화를 한 번에 보고 나니 좋다!멋있다는 감각이 마비돼 가고 있던 차에 야외 풀밭에서 우리는 더  아름다운 걸작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친근함으로 코를 갖다 대고 향기를 맡으며 더욱 행복해졌습니다.
멋진 화분에 담겨지지 못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주인공이 되어 관리 되지 못한 벼려진 이름 모를 국화였습니다.자란 상태도 불량하고 꽃도 겨우 몇 송이 가까스로 피워 올린,길가 잡초 속에 자란 모습이지만 우리에겐 훨씬 친근함으로 다가섰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괜한 표현인가 싶지만 이 국화를 관리하고 계신 다른 손길이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지나간 한줄기 빗방울 때문일까? 길가에 낙엽은 무겁게 날리고 있습니다.
한 구석으로 도망가던 진한 붉은 빛을 띤 낙엽을 따라가서 주워 들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왔는지 많은 부분이 찢겨져 있습니다. 이름 모를 벌레가 만든 망사줄기도 보였습니다. 색깔이 예뻐 기념삼아 수첩에 끼워넣고 가슴에 함께 담았습니다.
지난  계절을 달려오면서 찢기고 상처난 가난한 내 마음 같아 괜한 애착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리지어 구르는 저 단풍들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은 아닐런지(?) 몸을 아는 듯 붕어빵 가게가 눈을 유혹하였습니다. 반가움에 덥석 입으로 가져간 붕어빵은 겉은 찬 바람으로 이미 식었지만 속에는 따뜻한 열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마치 식어버린 우리들의 얼굴처럼, 그러나 마지막 불씨가 된 우리의 가슴은 아직 따뜻한 것처럼... 호호 불어가면서 입안을 녹이는 달콤함에 잠시 머리속에 상상의 작은 모닥불을 지폈습니다. 상처 속에서도 자신의 붉은 빛을 포기하지 않았던 낙엽처럼, 이미 중년이 되어 식어버린 가슴에 상상으로나마 추억의 모닥불을 지펴 보았습니다. 비록 화력 넘치는 장작더미는 아니어도, 혹여 남이 태우다 버린 숯 몽둥이가 된 나무토막이라도, 아니면 젖은 낙엽을 모아서라도, 말라서 줄기만 남은 가시가 돋힌 풀 무더기라도, 불쏘시개로 삼아 나만을 위한 작은 불을 붙여봅니다. 하얀 연기만 나고 아직 불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기를 불어넣던 입, 살짝 내비친 눈물과 콧물까지, 나는 소년으로 이미 돌아가 버렸습니다. 오직 빨리 불을 붙여보겠다는 일념으로 더 크게 더 세게 힘껏 공기를 불어봅니다. 엎드려 땅에 가까워진 얼굴에는 젖은 낙엽이 붙습니다. 드디어 희망의 붉은 불씨가 보이고 우리는 벌써  타오르는 불길에 온 몸을 녹여줄 따뜻함을 보상받을 기대에 부풀게 됩니다. 불빛을 바라보고 멀리 있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들의 얼굴에 불의그림자가 춤을 춥니다. 누군가 고구마를 넣으며 참견합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무거운 머그컵으로 진한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어느 덧 내 가슴도 모닥불을 닮아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만남을 소중히 합니다. 만나면 먼저 그 사람의 눈을 본다고 합니다. 눈동자가 안절부절 하면 불안한 것입니다. 상기되어 충혈되어 있으면 피곤한 것입니다. 초롱초롱 빛나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오늘 자연의 심장 속에서 자연의 붉은 눈동자, 단풍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상상 속의 친구가 되어 인생사를 나눴습니다. 언젠가 수첩 속의 상처난  붉은빛 친구를 통해 오늘의 나를 만날 생각입니다. 마지막 단풍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름다운 이 가을!
행복하고 멋진 꿈을 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