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붓으로 인생을 그린다.

끓어오르는 한 낮의 수은주가 뭉개구름 증기를 올려 높다란 하늘 가득, 몽실몽실 솜털구름으로 채워놓았습니다. 가로수 그늘 사이로 비를 피하듯 볕을 피해 걸어가는데 더위 속에서 팔짱을 낀 앞서 걷는 젊은 연인의 하늘을 보며 종알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며 들려옵니다.“저기 구름 속에 거북이가 보이지. 그래 맞아 그 옆에 나무도 있고 토끼도 보이네. 맞장구를 치며 행복해 하는 그들의 숨은그림찾기 놀이에 나 역시 마음으로 구름 속 내게만 보여 지는 옛 추억을 찾아 더듬어 봅니다. 사람의 눈은 신비한 안경 같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보면 행복한 일들이 거기에 보이고 어두운 마음으로 본다면 거기 또한 어둠으로 답답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구름이란 지상에서 발생한 많은 공기입자들이 하늘로 올라가 그 공기 속의 미세한 물방울들이 차가워져서 엉기고 모여 공중에 떠다니는 것입니다. 구름은 눈이나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하루의 일기를 예측하는 게시판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구름은 예로부터 신비함의 대상이었고 인생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하늘의 구름을 보며 하루를 시작 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하늘에 그려지는 구름은, 마치 커다란 푸른 캠퍼스에 하얀 물감으로 그려놓은 하나님의 작품 같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잔잔한 호수 같은 그림을, 어떤 때는 단단한 붓으로 휘어 갈긴 것처럼 강한 자국을, 때론 검정 먹물을 묻혀 화폭을 채워 어두운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구름에 비견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구름처럼 흘러간다.’고도 표현하고 답답한 인생은‘먹구름’에 비유하기도 한 것입니다. 또 사람들의 모임을‘구름떼처럼 몰려왔다’고도 표현하고 반대로‘구름처럼 흩어졌다’고도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땅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은 그들의 인도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고, 또한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보호하심의 손길이었습니다. 또 지명에도 염원을 담은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과거 농경시대에 농사를 지을 때 천수답이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씨앗을 심고 비가 내려야만 자랄 수가 있으니 농부의 마음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바란다는 망운(望雲)이란 지명이나 운남(雲南), 아름다운 지역을 구름다리를 연상하며 운교(雲橋)라고도 불렀습니다. 마치 소나기라도 한번 시원하게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나 시원한 바람이라도 한번 불어 왔으면 하는 소박한 소원도 저 구름과 함께 시작되는 것을 알았던 인생의 지혜였을 것입니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났지만 여전히 끓는 대지의 열기를 붙들고 간절한 마음을 품어 저 푸르고 높은 하늘 위에 마음의 붓을 꺼내 소원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마치 붉게 타오르는 동녘의 기상처럼, 때론 저물어가는 쓸쓸한 황혼의 애달픔처럼, 내 인생의 자화상을 그려봅니다. 화가가 어떤 색의 물감을 사용하느냐, 어떤 붓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밝게도, 화려하게도, 어둡게도, 부드럽게도, 날카롭게도 그려지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가슴에 숨겨놓은 작은 붓 하나 꺼내 말로 못한 초록의 감사와 붉은 사랑의 물감을 묻혀서 오늘이라는 내 인생을 그려 봅니다. 푸르른 창공 너머, 포근한 솜 같은 구름의 품을 향하여 나그네의 하루가 달려갑니다. 잠시 후에 열릴 커튼 뒤의 화려한 주인공이 되어...